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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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지도부 자격 없다” 책상 쾅… 박지현 “날 왜 뽑아 앉혔나”

野 선대위 회의 ‘586 용퇴’·반성 놓고 충돌

박지현, 연이틀 586 퇴진 거론하자 논쟁
당 강경파 “내부 총질하지 말라” 朴 비난
최강욱 성비위 문제 삼자 ‘처럼회’ 반발
선거 일주일도 안 남기고 최악의 분열
일각선 참패 후 ‘책임론’ 대비 행보 지적

박용진·양이원영 등 일부 朴 지지 선언
“의원들 기득권 지키기가 빚어낸 참사”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이날 두 위원장은 비공개 회의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기조와 관련해 고성을 지르며 충돌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6·1 지방선거를 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25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의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를 연상케 했다. 당시 민주당은 문재인 대표와 최고위원 사이 갈등의 골이 깊었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주승용 최고위원이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문 대표 등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 최고위원을 공격했다. 급기야 유승희 최고위원이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는 등 최고위원회의가 ‘봉숭아학당’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20대 청년 여성으로 ‘파격 영입’된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와 반성에 이어 쇄신을 약속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반성하지 않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더 깊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사과드리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며 “대선에서 졌는데 ‘내로남불’도 여전하고, 성폭력 사건도 반복되고,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팬덤정치도 심각하고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이 ‘586 용퇴론’뿐 아니라 사과 및 반성에 나선 데에는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체감해서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반성 없는 민주당의 행태에 중도층이 더 등을 돌리자 마지막 읍소 전략을 택한 것이다. 박 위원장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 시점에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인이 직접 판단해서 낸 메시지”라고 부연했다.

박 위원장은 강성 당원들이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 폭탄을 쏟아 내고, 당내 각종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결국 칼을 빼 든 것이다. 박 위원장은 “잘못된 팬덤정치 끊어 내야 한다”며 “‘검찰개혁 강행만이 살길이다’ ‘최강욱 봐주자’라는 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인물이다. 비대위원장 취임 첫 메시지로 “성비위 무관용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한 만큼 당내 문제를 묵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지만 다른 지도부 및 의원, 그리고 강성 지지층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위원장의 발언이 결집에 방해가 된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상임선대위원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도부와 의원들이 박 위원장을 향해 ‘내부 총질 하지 말라’며 조직적으로 반박하면서 당내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개회의에서 박 위원장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반박이 곧바로 나왔고, 비공개로 전환한 뒤에는 고성과 호통이 오가며 충돌했다. 선거를 앞두고 최악의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박 위원장 등 비대위는 당내 강경파와 강성 당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특히 박 위원장이 최강욱 의원 성비위 건을 계속 문제 삼자, 최 의원이 소속된 당내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날 판사 출신 이수진 의원도 “비대위는 ‘찰나’일 것”이라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당원들의 질책도 적지 않다”고 압박했다.

박 위원장이 대선 때 한차례 지나간 ‘586 퇴진론’을 다시 꺼내 든 점도 당내 기득권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등은 “개인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윤 위원장에게 같이하자고도 했고, 김민석 총괄본부장에게도 취지와 내용을 전하고 상의드렸다”고 반박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 기류가 만연하자, 벌써 참패 후 ‘책임론’ 공방을 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박 위원장이 궁지에 몰리자 당내에서 일부 동조하는 의원들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 위원장 옆에 서겠다”며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과가 국민들께는 울림이 있었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양이원영 의원도 “비대위원장으로 모셔 왔는데, 보기 좋은 인형이 아닌 다음에야 이미 예상된 일”이라며 “듣기 싫은 얘기하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듣기 싫은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문제가 아니겠나”라고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빚어 낸 참사라고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박 위원장의 말이 현재 중도층이 공유하는 인식과 맥이 닿는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기려면 박 위원장과 같은 메시지가 필요하다”며 “뭔가 호응이 더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박 위원장을 코너로 몰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처럼 비친다”고 꼬집었다.


최형창·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