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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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양식’ 화려한 문화 낳은 환락의 도시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③ 아테네서 고린도로

본토서 고린도 운하 건너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번지 점프 아찔한 풍경

고대 그리스 유적 위에
다시 새워진 로마 유적
세월 흔적 찾아 시간여행
제우스 신전. 신들의 왕이라 부르는 제우스 신전은 로마시대 완성된 아테네에서 가장 큰 신전이다.

그리스 여행은 일반적으로 본토 여행과 섬 여행으로 나뉜다. 이번 그리스 문명 여행은 아테네를 기점으로 그 외곽 지역을 차량으로 둘러보는 본토 여행을 시작으로 피레우스 항구에서 크루즈를 탑승하여 여러 섬을 둘러보는 섬 여행으로 계획했다. 아테네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며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앞으로 펼쳐질 멋진 여행을 위한 바람을 기원해 본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서 본 거대한 제우스 신전은 사진으로 기억에 자리한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실물은 현실이라 믿기에 거대한 모습으로 놀랍기만 하다. 넋 놓고 바라보다 시간 흐름을 잊은 채 뒤늦게 발걸음을 옮긴다. 10여분을 걸으니 넓은 차도에 이르고 길 건너편에 오래된 문이 하나 보인다. 2000년 세월 가까이 반원 아치 곡선미를 뽐내는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이다. 문을 지나면 운동장처럼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거대한 기둥 몇 개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신전임을 가늠케 한다. 신들의 왕이라 부르는 제우스를 위한 신전이라 한다.

 

입구에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이 있는 이유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임하던 로마 시대 신전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울타리를 돌아 반대편까지 가야 출입이 가능하다. 10분 정도 더 걸은 듯하니 신전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미루어 짐작해 본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제우스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안내 책자를 읽어 보니 또 다른 건축용어가 등장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남부, 터키 등 신전이 보존되어 있는 여행지를 다니면 안내 책자에 빈번히 건축 양식 용어들을 만날 수 있다. 시대 순으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그리고 코린트식이 대표적이다. 코린트식은 가장 후대에 나타난 것으로 상대적으로 화려하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제우스 신전에서도 그 화려함을 찾아볼 수 있다. 투박한 느낌을 주는 도리아식의 파르테논 신전과는 대조적이다. 이오니아식은 아크로폴리스 위 또 하나의 신전 에렉테이온 신전 기둥에서 만나 보았다. 이렇듯 멀지 않은 곳에서 세 가지 양식의 건축물을 모두 볼 수 있다니 역시 아테네는 문명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제우스 신전의 코린트양식을 따라 다음 목적지인 고린도로 향한다. 고린도, 코린트, 코린토스 모두 같은 곳으로 우리에게는 성경의 고린도전서 때문인지 고린도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고린도는 아테네 서쪽, 차량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코린트양식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기원전 8세기부터 수준 높은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차량으로 뒤얽힌 복잡한 아테네 시내를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으니 바다가 펼쳐진다. 좌측 창가로 넘실대는 파란 바다와 구름이 그저 낭만적인 분위기이다. 페르시아 전쟁의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던 무거운 역사를 뒤로하고 푸르른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창밖 풍경을 즐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 아래 펼쳐진 거대 운하에 이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리 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어떤 풍경인지 궁금해 차에서 내려 지나온 다리로 다시 되돌아가 본다. 길게 뻗은 운하이다. 다리 아래 폭 24m로 6km에 이르는 운하를 내려다본다.

고린도유적.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 로마가 진출하면서 파괴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기원후 로마에 의해 그리스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재건되었다.

커다란 운하처럼 느껴지지만 얼마 전 뉴스로 접하던 이집트 수에즈운하처럼 무역선들이 오고 가거나 현대 선박이 통과하기에는 무리라고 한다. 경제적 중요성은 크지 않지만 고린도운하는 여전히 관광용 여객선들이 오가며 중요한 의미를 남긴다. 조금 더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배로 운하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험을 해봐도 좋았을 듯하다. 다리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환호성을 따라 시선을 멈추니 번지점프대가 보인다. 그 스릴을 경험할 수 없더라도 운하 사이를 한 사람의 몸으로 가르는 멋진 점프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짜릿한 흥분이 전해진다.

 

운하를 건너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들어선다. 그리스 도시국가 중 아테네 다음으로 유명한 스파르타와 올림피아 일정 대신 선택한, 고린도 유적을 기대하며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 첫 숨을 내쉰다. 수많은 고대 도시들은 건물들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흔적들에서 도시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찾아본다. 아테네에서 본 아크로폴리스와 언덕 아래 아고라와 극장들처럼, 고린도도 상당히 높은 곳에 아크로고린도가 있고 그 밑에 도시가 펼쳐져 있다. 파괴된 역사 위에 새로운 문명이 세워지고 문명 위에 또다시 세워진 문명을 찾아 헤매 본다. 어떤 것들이 기원전 고대 그리스 유적이고 어떤 것들이 그리스 유적 위에 다시 세워진 로마 시대 유적인지. 세월의 흔적을 찾아 과거 찬란했던 고대 문명을 상상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