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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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반대에도 힘으로 밀어붙인 與… 총리 인준안 단독 처리

의장 직권 상정… 野 불참 속 가결
文 대통령 지명한 지 27일 만에
임혜숙·노형욱 청문보고서도 채택
朴 “국민 눈높이 안 맞아… 저의 불찰”
與 또 힘으로 밀어붙여… 정국경색 심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인사청문특위에서 채택되지 않은 가운데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김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전격 사퇴하자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강행 처리했다. 4·7 재보선에서 표출된 심판 민심을 고려해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지만 끝내 결렬되자 ‘거여 국회’의 압도적 의석수를 동원해 또다시 힘으로 밀어붙였다. 박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국무총리를 포함한 나머지 후보자들의 임명 명분이 확보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재석의원 176명 중 168명의 동의를 얻어 김 후보자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반대는 5표, 기권 1표, 무효는 2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김 후보자를 지명한 지 27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 나와 ‘법치파괴 의회독재’ 등 손팻말 항의 시위를 한 뒤 투표에는 불참했다. 정의당도 강행처리를 반대하며 배진교 원내대표가 의사진행발언을 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1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했지만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며 입장차만 확인했다. 그 사이 박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결단하면서 양측은 오후 4시 또다시 만났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국무총리 인준안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수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3인방 인사 문제를 연계했던 만큼 박 후보자의 낙마로 명분이 생겼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힘은 임·노 후보자도 지명 철회해야 한다고 맞섰다.

 

박 의장은 이에 직권으로 김 총리 후보자 인준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인사청문회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청문 절차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인준안을 바로 부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野, 피켓 든 채 항의 박병석 국회의장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한 13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여당 무시 협치 파괴’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채 항의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또 본회의가 끝나자마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각각 임·노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박 후보자는 앞서 이날 입장문을 내고 부인의 고가 도자기 불법 반입·판매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고 설명드렸으나 그런 논란이 공직 후보자로서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모두 저의 불찰”이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총리 인준 직후 국토위·과방위 열어 발언도 듣지 않고 청문보고서 채택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전격 사퇴를 계기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나머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강행 처리했다.

 

13일 박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면서 청문 정국을 둘러싼 여야 대치는 새 국면을 맞았다. 당청은 장관 후보자 3명 중 1명이 물러나는 선에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은 임·노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김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뒤 국토교통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각각 열렸다. 과방위에서는 의사진행발언 이전에 임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채택시켰다. 회의 속개 선언 후 의결 선포까지 걸린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과방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은 국회법에 따라 요청하면 주게 돼 있다”며 “야당이 있으면 야당 의견을 듣고 채택이든 아니든 해야지 어느 나라 법이 이러냐”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과방위원 일동은 이날 본회의가 끝난 후 성명서를 내고 “만약 임 후보자 임명을 고집한다면 문재인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3일 자진사퇴를 발표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뉴스1

국토위 역시 의사진행발언 이후 보고서를 채택했다. 채택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금 시기에 부동산 주무부처로서의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끝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노 후보자는 종부세에 대해서도 ‘완화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눈치보기에 급급해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됨에 따라 청와대는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임·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뒤 구두논평을 내 “두 후보자는 부처의 수장에 자격미달이며, 국민도 원치 않는 인사”라면서 “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민심에 의해 또 전복돼 추락할 일만 남은 듯 하다”고 꼬집었다.

 

이날 박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청와대가 여당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로 해석된다. 일단 청와대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로, 정권 말기 당청관계의 무게추가 당쪽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전날 논란이 된 장관 후보 3인방 중 최소 1명 이상에 대한 부적격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할 것을 지도부에 요구했다. 당초 문 대통령이 4주년 특별연설에서 세 장관 후보자를 감싸안는 언급을 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청와대 의중은 강행처리에 가까워 보였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후보자 결격사유에 대해 낙마까지는 아니지 않으냐는 기류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주말 이미 국회 의견을 취합한 참모진으로부터 ‘1명 정도의 사퇴는 불가피할 것 같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결론을 내놓고 임하지는 말자. 여야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서 판단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주도권이 당쪽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냔 관측에는 “장담하건대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이견이 노출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현미·이우중·이도형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