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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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文정부 징비록

‘나라다운 나라’ 희망 사라지고
“이게 나라냐” 탄식 쏟아져
반칙의 전횡 멈추지 않으면
백성들이 배를 뒤집고 말 것
임란 전시내각을 이끈 서애 류성룡은 전쟁이 끝난 후 낙향해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징비는 ‘나의 지난 잘못을 반성해 후환이 없도록 삼간다’는 뜻이다. 400여년 전 그때처럼 대한민국은 기둥이 썩고 지붕이 새고 있다. 백성의 원성이 이미 강물을 이루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돌 연설엔 자성은 없고 자찬만 가득하다. 이에 류성룡의 심정으로 징비의 붓을 다시 든다. 임기 350일을 남긴 문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들에게 경계의 거울로 삼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하, 2017년 정유년 반정을 기억하시옵니까. 비선의 전횡에 놀란 백성들이 촛불을 들고 구름처럼 광화문으로 모였나이다. 신을 비롯한 모든 백성의 소망은 오로지 ‘나라다운 나라’였습니다. 전하께옵서 즉위식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필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전하의 망극한 윤언에 백성들은 환호작약하였나이다. 하오나 “이게 나라냐”라는 그날의 탄식이 백성의 입에서 다시 나오고 있사옵니다.

배연국 논설위원

지금 나라에 역병이 돌아 백성의 삶이 날로 곤궁해지고 있나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조정에서 양곡을 풀고 있사오나 화급한 일은 양곡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위무하는 것이옵니다. 무엇보다 전하의 언행을 조심하시옵소서. 전하의 언어는 풀잎처럼 가볍고 청결하지도 않사옵니다. 백신 도입이 늦어진 것은 상황을 오판한 전하의 허물이 크옵나이다. 하온대 전하께선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돌리면서 “코로나의 긴 터널 끝이 보인다”고만 하십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그때의 주상전하는 정녕 어디에 계시나이까.

 

전하께선 분열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하시면서 스스로 분열의 광장으로 들어가시옵니다. 나만 옳다는 아집으로 충언에 귀를 막고 찍어 누르십니다. ‘탈원전’, ‘소주성’에서 보듯 독선은 독재보다 무섭사옵니다. 힘에서 비롯된 독재는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나 의식에서 비롯된 독선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독선은 독주를 낳고 국민을 모래알처럼 흩뜨리나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전하의 나라에서 윤미향, 추미애, 공무원 특공 부정이 이어지고 있사옵니다. 불의와 정의가 뒤바뀌는 오늘의 변고는 모두 전 법무대신 조국으로부터 시작되었나이다. 전하께선 조국 내외의 자녀 입시부정을 감싸시면서 하직하는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슬퍼하셨사옵니다. 군주는 만백성의 어버이입니다. 어찌 부정한 대신만 눈에 밟히고 죄없는 백성의 눈물은 보이지 않으시나이까.

 

이번 ‘반칙 내각’은 국법 질서를 깨뜨리는 인사 참극이옵니다.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영의정 내외가 교통 위반과 상습 체납으로 32번이나 차량을 압류당한 일은 실록에 싣기조차 민망합니다. 조정 신료 중에는 툭 하면 백성을 때린 자가 있고, 거짓 병가를 내고 외유를 즐긴 자도 있사옵니다. 이런 도적의 무리에게 어찌 국사를 맡길 수 있나이까. 소신은 하루하루 눈물만 뿌리옵나이다.

 

전하께서는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큰 봉우리”라면서 중국을 높이고 우리의 국격은 바닥으로 떨어뜨렸사옵니다.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어 독립문을 세운 1897년의 대역사를 잊으셨나이까. 사신 노영민은 중국 왕을 알현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고 적었나이다.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조선의 노론처럼 ‘황하의 물이 아무리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며 중국에 조아렸으니 이런 망극한 일이 어디 있사옵니까. 그런 미욱한 자를 도승지로 발탁한 분이 바로 전하이십니다.

 

전하께선 북쪽의 오랑캐 무리에게도 허리를 굽히시옵니다. 저들이 “삶은 소대가리”, “태생적 바보”라는 망발을 일삼아도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십니다. 외적의 그악한 무례는 한없이 포용하시면서 우리 백성의 작은 힐난은 어찌 곤장과 철퇴로 다스리시나이까.

 

전하, 군주가 배라면 백성은 물이옵니다.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나이다. 4년 전 반정의 교훈을 잊지 마십시오. 부디 백성의 뜻을 받들어 선정을 펼치옵소서.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