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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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이준석 현상과 정치혁신

野 당대표 경선에 국민 관심 집중
청년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선 것
비전 내놓고 정책이 뒷받침해야
시야와 전망을 더 멀리 높게 잡길

국민의힘 당대표를 뽑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가 어제 시작됐다. 9∼10일 진행되는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해 11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승자가 발표된다. 원내 진출 경험이 없는 36세 이준석 후보가 예비경선 1위의 기세를 몰아 당권을 거머쥘지가 관심사다. ‘이준석 현상’으로 불리는 보수 혁신의 앞날도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많은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세대 간 대결 구도가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고 4·7 재보선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늘리면서 보수 진영이 고무된 것도 한몫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간에 청년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선 것은 돌이킬 수 없다. 국민의힘 신세대는 보수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박완규 논설실장

지난 3일 여야의 행사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이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고, 탄핵은 정당했다”고 못 박았다. “당대표직을 수행하는 동안 사면론을 꺼낼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텃밭이자 당권 경쟁 승부처에서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중진 후보들은 그를 겨냥해 “설익은 밥솥 뚜껑을 여는 리더십” “간판을 떨어뜨리는 바람”이라고 했지만 파급력이 없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이준석 현상에 대해 “구정치인들에 대한 국민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과 2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조국 사태나 부동산정책에 관한 쓴소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초선다운 패기는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내부 단합’을 강조해서인지 청년 일자리 등 정책 건의를 하는 데 그쳤다. 송영길 대표에게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발을 뺀 것이다. 친문 세력의 뜻에 어긋나는 소신 발언을 했다간 감당하지 못할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여당 소장파에 눈여겨볼 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 이러다간 여당이 조타수도 방향타도 없이 정치혁신의 거센 물결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이준석 현상은 정치혁신의 계기가 될 테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후보는 시대정신으로 ‘공정’을 꼽는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 경쟁을 추구하면서 여성·청년 할당제 폐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능력 위주 경쟁으로는 약자에 대한 배려나 공존·화합의 여지를 찾기 어렵다. 경쟁을 완화하고 기회를 넓혀가는 게 진정한 공정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우리가 공정성에 민감한 것은 좋은 일자리 등을 얻을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20대 남성 편에서 젠더 문제를 보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공정 경쟁 정도의 콘텐츠로 2030세대가 구세대를 뒷방으로 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정치를 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혹여 2030세대의 현실 불만에 따른 감정적 대응에 기대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학자 라종일은 평론집 ‘사람과 정치’에서 정치 승계와 관련해 “권력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시야와 전망을 얼마나 멀리, 얼마나 높게 잡는가라는 문제”라고 했다. 권력 의지보다 비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철학자 최진석은 ‘경계에 흐르다’에서 “말에 대한 다른 태도만이 다른 정치를 기약한다”고 했다. 정치는 말로 이뤄지는 만큼 말을 과거와 다르게 써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고유한 말과 비전을 갈고닦는 게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이준석 현상은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혁신의 길을 열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민은 정치권이 물갈이를 해서 편가르기·계파갈등으로 허송세월하는 행태를 쇄신하라고 요구한다. 여야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박완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