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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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철거건물 붕괴 참사, 안전수칙 무시한 후진국형 人災다

애꿎은 버스승객 17명 사상 충격
기준과 다른 ‘편법’ 해체공사 탓
당국 관리감독 소홀도 수사해야

그제 광주광역시 학동 재개발구역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로 무너지면서 인근 시내버스를 덮쳐 17명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아들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고 귀가하던 60대 어머니,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돌아가던 고교생 등이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내버스에서 이런 날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기본적인 현장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후진국형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니 말문이 막힌다.

당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철거업체가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층별로 지지대를 설치하고 5층에서부터 외부벽, 방벽, 슬래브 순서로 철거한다는 계획을 어겼다는 것이다. 지난 1일부터 이 건물 4∼5층을 그대로 둔 채 굴착기가 3층 이하의 구조물을 부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굴착기 무게를 지탱할 만한 지지장치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이다. 사실상 무용지물인 가림막만 걸어 놓았을뿐 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방치한 건 치명적인 실수다. 공사 시작 전에 버스정류장을 옮겼더라면 참사를 면했을 것이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이번 참사는 2년 전 서울 잠원동에서 발생한 5층 건물 붕괴 사고와 거의 판박이다. 그때도 안전조치 소홀이 원인이었다. 지난해 5월 건물 철거공사의 안전규제가 대폭 강화된 ‘건축물 관리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 참사 당시 현장에도 감리자가 없었다. 현장 작업자가 원청에서 하도급,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계약구조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공사 현장에서는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만큼 무리한 속도전을 벌였을 개연성이 크다. 광주에선 두 달 전에도 비슷한 사고로 4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재난에 상시 대응이 가능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법 따로 현실 따로’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구호만 외칠 것인가. 대책을 내놓아도 현장에서는 겉도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당국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촘촘히 메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이런 참사가 발생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