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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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임기 말 성과 급급한 ‘남북관계 과속’은 금물이다

통신선 복원 후 민간협력 승인
‘남북정상회담 띄우기’에 골몰
10·4선언 반면교사로 삼아야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난달 27일 통일부 연락대표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서울사무실에서 직통전화로 북한 측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정부가 지난달 27일 남북 간 직통 연락선 복원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엊그제 “대북물자 지원 필요하다”며 민간 차원의 대북인도협력물자 2건을 승인했다. 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서해상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민간 차원의 대북물자 반입이 9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달 중·하순으로 협의 중인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에 영상회담 시스템 마련을 위해 협의하자고 제안한 것도 뒤늦게 공개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통신선 전격 개통으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반전의 모멘텀을 찾은 만큼 교류와 화해의 불씨를 적극적으로 살리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우리 정부가 ‘성의 표시’를 하면 국경봉쇄까지 하고 있는 북한은 경제난과 코로나19 대응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동시에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이후 단절된 북·미 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여권 전체가 ‘남북정상회담 띄우기’에 나서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이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열렸으면 한다”며 “가능성이 제일 높은 시기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라고 했다. 회담 시기까지 적시한 것이다. 대통령 최측근인 윤건영 의원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잃어버렸던 남북관계 10년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거들었다. 베이징올림픽은 2022년 2월 열리는데, 3월9일은 대통령 선거 일이라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행태는 없어야 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선순환 구조로 ‘TV용 쇼’가 아닌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꺼내기 전 미국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3년 전 ‘평창의 봄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9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현 정권은 임기 내에 남북관계만큼은 성과를 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북한은 우리 측에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대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비핵화 대화 의지의 진전이 없는 남북교류 및 정상회담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 평양에서 이뤄낸 ‘10·4 선언’이 휴지 조각이 된 역사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