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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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정치가 언론마저 덮는다면

여권 ‘언론징벌법’ 작전하듯 강행
엉터리 개정안, 절차·시점 무리수
‘검수완박’ 이어 언론 자유 침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도전

정당의 존립 목적은 정권 획득이다. 집권여당이 되면 정권재창출을 위해 가능한 수단은 다 쓰고 싶을 것이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을 부르짖다 ‘100년 집권론’까지 거론한 바 있다. 대선을 앞둔 여권 입장에서 재집권 목표의 최대 걸림돌은 뭘까. 내심 언론, 검찰, 사법부를 꼽지 않을까. 정권이 무리수를 두면 법률로 견제하고, 여론으로 비판하기 때문이다. 여권이 의석수 절대우위를 앞세운 입법 폭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이 세 곳만큼은 정권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구조다.

조국·추미애·박범계 등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은 인사·징계권을 휘둘러 검찰을 무력화시켰다. 검사장이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며 사표를 냈고, 정권 관련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정권이 검찰을 사실상 장악했다는 건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지형을 진보 우위로 바꿔놓았다. 법원의 핵심 요직은 진보 성향인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위법, 이재명 경기지사 무죄 등 ‘여권 봐주기 판결’이 잇따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다음 타깃은 언론이다. 친문 강경파들은 “수사권 조정, 검찰 주류 교체 등 검찰개혁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이제 언론을 손봐야 한다”고 여권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대선 국면에 본격 진입하기 전에 쐐기를 박자는 말이 거리낌없이 나온다. 친문 표를 의식한 여당의 대선 경선주자마저 거들고 있다. 이런 짬짜미 속에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가 등장한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언론의 오보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물리는 등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소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사전에 법안 내용도 공개하지 않은 채 표결에 부쳤다. 법안 내용이 수시로 변할 만큼 엉터리였다. 급기야 여당 대표는 8월 중 본회의 처리까지 끝내겠다고 한다. 마치 군사 작전을 보는 듯하다.

문제는 개정안 내용이 하자투성이고 위헌적 독소 조항도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명예훼손죄 등 기존 규제가 있는데도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는 건 이중처벌 소지가 다분하다. 언론사 매출액을 손배 기준으로 삼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앞으로 발생할 손해 규모와 무관하게 매출액 기준으로 미리 배상액을 책정하겠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해당 언론사에 지운 건 상식이 아니다. 이뿐 아니다. 포털의 뉴스 편집권 규제, 인터넷기사 열람 차단, 인기 투표로 정부 광고를 나눠주겠다는 법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법안 강행 절차와 시기도 문제가 많다. 여당의 총공세는 문체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주는 8월 말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최대한 봉쇄하겠다는 속셈 아닌가. 그것 말고는 위헌 부담을 무릅쓰면서까지 악법을 만들어야 할 사정이 뭐가 있겠나. 정권 연장을 위해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 이어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을 노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은 태생적으로 권력과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감시 대상인 권력이 언론을 징벌하겠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도전이다. 언론이 위축되면 국민의 알권리가 축소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기 마련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는 성명을 내고 “개정안은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친정권 성향의 언론단체마저 “도를 넘는 언론통제”라고 비판하겠나. 만에 하나 이런 악법이 통과된다면 한국을 더 이상 언론자유국이라고 부를 수 없다.

‘조국 흑서’ 공저자인 권경애 변호사는 문재인정부에 대해 “파시즘으로 가는 단계”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이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한 오만과 독선 탓이다. 그럼에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무리하게 언론마저 장악하려 한다면 언론계는 물론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법 폭주는 그만 멈춰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