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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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동메달의 행복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됐을 때 우승자는 올리브 월계관과 함께 메달을 받았다. 당시 우승자에게는 은메달과 우승 증서를, 2위에게는 동메달을 줬다. 3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대회 때는 메달이 사라졌고 대신 트로피를 수여했다. 1904년 제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이 등장했고, 이때부터 1,2,3위에게 금,은,동메달을 주는 전통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금메달을 순금으로 만들어 줬지만, 팔아치우는 선수들이 자꾸 생기고 비싼 재료비가 부담되자 192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 올림픽 때부터는 도금 메달을 수여해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에 따르면 금메달은 순도 92.5% 이상의 은에 6g 이상의 금을 도금해야 한다. 은메달은 순도 92.5%의 은으로 제작한다. 동메달은 순수한 구리가 아니라 구리에 주석을 섞은 청동 메달이다.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선수들에게 말로는 “즐기고 오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금메달 우선주의는 선수들의 부담감을 높이고 경기력을 떨어뜨린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6관왕이 유력시되던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가 잇달아 기권한 걸 보면 얼마나 중압감이 큰지 알 수 있다. 과거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

안드레아 루앙라스 미국 아이오와대 마케팅 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5개 하계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들의 사진을 표정 자동분석 소프트웨어로 분석했다. 그 결과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은메달 선수는 금메달 선수와 비교해서 실망하지만, 동메달 선수는 4위 선수와 비교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루앙라스 교수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신보다 더 빠르고 똑똑한 사람과 비교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올림픽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이자 생활의 지혜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