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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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공감산책] 폭염, 이상 기후에 대한 단상

세계 곳곳서 폭염·폭우에 몸살
기후변화 대응 많은 희생 필요
편리함에 젖어 삶의 변화 거부
이러다 기상이변, 불변 될수도

2020 도쿄 올림픽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최 여부부터 문제가 됐다. 한 해 늦추어 개최됐건만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다시 코로나19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날씨 또한 따라주지 않는다. 현장은 대체로 섭씨 35도, 습도 70%로 체감온도 37도까지 올라간다.

연일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다. 선수들은 경기 중 실신하는가 하면 휠체어에 실려 나가기도 하고 경기 중단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기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지난 40년간 개최된 대회 중 가장 무더운 올림픽이라고들 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올여름 한국 역시 열섬현상이 일어나며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열대야 일수가 13일, 폭염 일수가 15일을 넘어가면서 여름철 평균 수준을 벌써 웃돌고 있다. 아직 8월이 남아 있건만 말이다. 사람들은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등 각종 온열질환에 시달린다. 닭이나 돼지의 축사 피해 등 동물들도 힘겨운 여름을 보내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폭염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난다. 독일, 벨기에 등 유럽에는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져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 두 나라에서 홍수 피해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2일 현재 230여명, 실종자는 1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40년 만에 최악의 홍수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수백명에 이른다고 한다.

기상 이변은 너무 잦아서 어쩌면 이변이 불변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계절과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은 화씨 1도 이상씩 상승해 왔다. 온도 증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려 0.93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1에 도달하게 되면 온도가 0.93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2013년 유럽 5개국(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폭염으로 3만5000여명이 사망했으며, 2014년 여름 인도에서 기록적인 폭염으로 2000여명이 사망했다. 이 모두의 원인이 정확히 지구 온난화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치명적인 폭염은 기후 변화가 악화되면서 일어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21세기 말 해수면은 91cm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승이 지속될 경우, 몰디브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해발 아래의 나라는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과 같은 개발 도상국가들은 전력의 75%가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석탄 연소 발전소에서 나온다. 이렇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전 세계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진정 더 큰 문제이다. 사람들은 파리에서 테러범이 수십 명을 죽인 비극에 충격을 받지만 이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인 기후 변화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테러사건이나 기후 이변 모두 불행한 사건이며, 희생자의 수를 단순비교함으로써 사태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긴 하다. 그러나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하면서 상대적으로 희생자가 적은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다소 놀랍다. 또 계속되는 기후 변화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든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과학적 결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때로 사람들은 욕구에 의해 과학을 무시하고 싶어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처리하고 반응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무의식중에 사람들은 원하는 욕구에 맞는 정보에 끌리고 이를 받아들여 의사결정을 한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뒷받침된다 하더라도 자기 생각과 상충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깎아내리고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후 변화 연구에 편견을 가지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대응에 필요한 삶의 행동 변화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 이익을 위해 단기적 희생을 하는 것은 어렵다. 환경과 지구의 장기적인 건강보다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이다. 굳이 내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미래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이, 다회용 용기보다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에 굳이 뭔가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 따라서 현재 편안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과학에 대해 회의적이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는 기후 변화의 현실을 이해하고 납득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교육으로 이러한 생각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생활 태도를 고수할 수 있도록 과학적 예측을 무시하게 되는 인간 심리의 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루가 다르게 악화돼 가는 지구에서 살아가면서 그 심각성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시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홍보나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가상 체험관을 만들어 수시로 체험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아울러 교육에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는 것도 필요하다. 폭염이 지속되는 요즈음 그 심각성을 홍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머지않아 폭염이 끝나 선선한 가을이 오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이상 기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