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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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약자 위한 ‘쇼’ 계속돼야 한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아요.”

지난달 서울 도심에서 열린 심야 차량시위에 참가했던 한 자영업자의 말이다. 당시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4단계로 상향하자 수백명의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집합금지를 해제하라고 거리에 나섰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1인 시위를 제외한 모든 집회는 금지된 상황. 사람이 몰리는 집회를 취재할 때면 이들의 온전한 목소리보다는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도 넣은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에는 부채 의식이 남았다.

 

구현모 사회부 기자

거리에 나와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비슷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냉난방기 설치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시작한 직원들도 그랬다. 그들은 “사람이 쓰러져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함에도 집회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집회의 자유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한 방역 조치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집회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집회 대신 1인 시위를 열거나, 유튜브 생중계, 화상회의 앱 ‘줌(Zoom)’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낸다. 현실 세계의 제재를 피해 3차원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집회를 여는 이들도 있다.

오프라인 시위가 가로막힌 상황에서의 고육지책이지만,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일 벌어지는 1인 시위나 유튜브 시위 생중계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눈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절박한 목소리들이 텅 빈 거리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패션 정치’가 특히 눈에 띈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류 의원은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타투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장에 등이 깊게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그가 자신의 등에 붙인 꽃무늬 타투 스티커를 보여주며 주먹을 불끈 쥐자 수많은 매체가 그 모습을 주목했다.

물론 ‘쇼’라고 비판하는 쪽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패션이 이목을 끈 덕에 수십 년 동안 음지에 머물렀던 타투이스트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류 의원의 퍼포먼스가 없었다면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그들만의 집회’로 조용히 묻힐 수도 있었다. 류 의원은 ‘쇼 아니냐’는 논란에 “존재가 지워진 사람들의 절박함을 알릴 수 있다면 (쇼도) 얼마든지 하겠다”고 답했다. 약자들 목소리의 볼륨을 키우는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취약 계층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힘에 겨운 상황이지만 마땅히 호소할 데도 없고 주목도 받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어떤 쇼라도 계속돼야 한다.

특히, 국회는 한국 사회 각 계층의 불만을 녹여내는 용광로다. 취약계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해결책을 고민하는 게 국회의원의 의무다. 당리당략과 권력다툼을 위한 ‘정치쇼’보다 민생을 위한 쇼에 전념하기 바란다.


구현모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