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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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기상청장 “기후위기 극복 위해 나부터 실천을… 공동체 연대의식 필요” [세계초대석]

도시 밀집 한국, 기온 상승 가팔라
과거 자료 바탕 예측 더 힘들어져

2050년 탄소중립 못할 이유 없어
온실가스 감축 지구촌 모두 공감

기상 극한현상 대비 요구 높아져
미래 수요 맞춰 별도 인프라 필요
박광석 기상청장이 지난 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있는데 인식이 ‘위기 의식’으로 바뀌어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고도 하는데 정말 위기입니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집무실에서 만난 박광석 기상청장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위기 의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에 대한 인식은 정보 습득과 지식을 의미할 뿐 위기 타개를 위한 실천적 행동은 의식전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운 공직 생활 동안 환경·기후분야에서 일한 박 청장은 “기후변화 대응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 특정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기후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연대하면서 지역·국가·세계 공동체가 함께 행동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등 나라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몰고 오는 자연 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우리 국민의 일상과 안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기후 파수꾼의 수장으로 취임한 후 그 누구보다 기후 문제에 민감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은 박 청장과 일문일답.

-올해는 예전보다 기상청 오보 논란이 적었던 것 같다.

 

“날씨란 바뀌는 게 정상이다. 그 과정을 언론과 국민에게 잘 설명하고 제때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예보가 바뀌면 빨리 알려줘야 하는데 자칫 잘못해 어제 바뀐 예보를 오늘 알려주면 이전 예보가 잘못된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 그러지 않도록 힘썼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청 예보에 어려움은 없나.

 

“기후는 기본적인 날씨가 평균적으로 패턴화한 것이다. ‘삼한사온’(사흘 동안 춥고 나흘 동안 따뜻한 겨울 기온의 변화 현상) 같은 말은 날씨를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생긴 직관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패턴이 깨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과거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보하던 것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니 날씨 예보나 예측이 훨씬 어려워진다. 올해도 벌써 장마가 짧게 지나가고 폭염이 몇 주 온 뒤에 많은 비가 3주 가까이 이어졌지 않나.”

-기후변화로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변화가 어떤가.

 

“우리나라는 도시에 인구가 밀집돼 있다. 전 지구적으로 (1850~1900년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온도는 1.09도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기온 상승 속도가 훨씬 빠르다. 최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에도 기온 상승으로 인해 폭염 빈도가 크게 증가한다고 나온다. 요즘 ‘기후정의’를 많이 말하는데 폭염이 발생하면 에어컨 등 냉방 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살거나 일하는 취약계층이 더욱 힘들어진다. 기후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비도 평균 강수량은 같지만 집중화 현상이 강해진다. 지난해 여름처럼 한 곳에 며칠간 비가 쏟아지면 어느 지역이든지 감당하기 어렵다. 아무리 치수를 잘해도 강수가 집중된 지역은 댐 방류와 관계없이 그냥 잠긴다. 비가 시간당 100㎜가 내리면 손쓸 겨를 없이 저지대는 침수된다. 서울 광화문 지역만 해도 시간당 50㎜ 이상 비가 계속 내리면 빗물이 배수구로 빠질 틈이 안 생겨 잠겨버린다.”

 

-기상청이 IPCC 담당부처인데, 지난 8월 승인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보고서’의 의의는 무엇인가.

 

“제1실무그룹 보고서는 기후 전망이나 기후위기 원인 등 기후변화 현황을 판단하는 과학적 근거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와 개별 국가의 정책 결정 근거가 된다. 특히 예전과 달리 선진국들도 이번 보고서의 의미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 같다. 올해는 폭우로 독일이 쑥대밭이 됐고 일본에는 산사태가 났다. 미국도 얼마 전 뉴욕 등에서 물난리가 나거나 캐나다를 비롯해 대형 산불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도 대홍수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을 겪으며 변했다. 예전에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해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는다’며 싸웠을 텐데 지금은 양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동의한다. 그만큼 각국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더 체감하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빠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국제사회 기후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통상 IPCC 보고서가 나오고 난 다음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보고서가 과학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영국에서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린다. 과거에도 IPCC 보고서가 나온 뒤 (국제사회가) 교토의정서(1997년)를 채택한다든지 파리협정(2015년)을 맺었다. 제2실무그룹보고서가 내년 2월에 나오니 내년 COP도 중요하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 가능하다고 보나.

 

“(우리나라가)2050년 탄소중립 선언도 했고 못할 이유가 없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중시하는 이유는 1.5도 지구온난화가 일종의 임계점이어서다. 1.5도를 넘기면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재앙급 기후가 닥치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해야 된다고 국제사회가 합의하면서 동참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탄소중립의 핵심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비용 등) 부담을 어떻게 공유할지의 문제 같다. 탄소중립 부담이 충격적일 만큼 크다는 목소리도 많은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지 않으면 그땐 부담의 문제 아니라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서 못 견딜 것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지금 우리 사회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부나 국가기관의 의지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을 꼭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나.

 

“그 방법밖에 없다. CO₂(이산화탄소) 농도가 (IPCC)5차 보고서 때 391ppm에서 이번에 410ppm으로 올랐다.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가는 대기오염물질과 달리 CO₂는 굉장히 안정화된 물질이다. 대기로 배출되면 떠다니면서 없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CO₂ 농도는 누적배출량과 비례한다. 전 세계적으로 CO₂ 배출량을 줄이고 있어도 CO₂ 농도가 안 떨어지는 이유 또한 지난 몇십 년간 배출한 기체에 추가 배출이 계속 얹혀서다. 개발도상국들이 EU 등 선진국에 현재 탄소 배출량 말고 1850년 산업화 시기부터 누가 더 많이 배출했는지 따져보자며 ‘역사적 책임’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기도 하다.”

 

-기후변화에 따라 기상청이 신속 정확한 기후 예보를 하는 데도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어떤가.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관측장비와 수치모델, 예보관의 역량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예보 수준이 하향 평준화된다. 현재 슈퍼컴퓨터는 문제 없고 한국형수치모델(KIM)도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다만 예보 역량을 좀 더 강화하려면 해양 관측장비를 보완하고, 고해상도 센서를 장착한 기상 위성이 필요한데 예산 문제로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예보관 충원도 시급하다. 기상청 예보관 152명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 한 팀에 30∼40명씩 네 팀이 24시간 교대 근무로 전 세계 기상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느라 교육훈련을 별도로 하기도 힘든 처지다. 다른 나라는 5개 팀을 운영하면서 4교대 근무팀 외에 한 팀은 기존 예보를 분석해 뭐가 잘못됐는지 학습하고 다시 훈련한 후 업무에 투입된다. 예보관들이 열정적으로 토의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육체적으로 힘드니 짠하기도 하다.”

-기후변화 시대에 기상청의 역할은.

 

“기후변화로 단기간에 나타나는 극한현상을 미리 알려 대비하도록 하는 게 한 역할이고, 또 하나는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때 기후변화 시나리오 수립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그냥 있을 때와 저탄소 구조로 전환했을 때 우리나라 기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탄소중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극한기후 현상이 잦아질수록 더 상세한 분석자료를 요구하는 수요에도 대비해야 한다. 농업·산림·어업 등 자기 분야 맞게 정보를 달라고 하는데 이땐 별도로 맞춤형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하드웨어 강화와 분석요원이 더 필요하다.”

 

-기상청에서 모든 자연현상 정보를 생산하며 느낀 점이 있나.

 

“사람들이 기후에 순응해야 한다. 날씨를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인간의 활동으로 기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원래의 지구 기상시스템으로 돌아가려면 기후변화 원인 물질인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어떤 분은 ‘지구가 아파요’라고 표현하는데 지구는 그냥 무감하다. 지구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 평형을 찾아가고 있다. 에너지의 평형을 위해서 태풍도 불고 북극한파도 움직인다. 지구에 그렇게 기후변화가 생겨서 아픈 건 결국 인간이다.”

 

-개인들은 일상에서 무엇을 하면 좋은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나 혼자 한다고 되겠어’라는 생각이 쉽게 들어서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나라가 돼 세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반대로 지구 전체의 문제니까 ‘왜 우리나라만’ 내지는 ‘왜 우리 분야만’이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집합적 효과가 나타난다. 혼자 실천해도 지치면 낙담하는데 그때 중요한 건 연대의식이다.”

 

박광석 기상청장은… ●1967년 경기 출생 ●1986년 동북고 ●1990년 서울대 정치학과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1998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2003년 델라웨어대 정책학 박사 ●2011년 환경부 기획조정실 기획재정담당관 ●2013년 환경부 자원순환국 국장 ●2015년 환경부 환경정책실 환경정책관 ●2017년 대통령정책실 사회수석비서관실 기후환경비서관실 선임행정관 ●2018년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2020년 11월 제14대 기상청장 취임

대담=이강은 사회부장, 정리=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