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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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한국판 ‘미네르바 스쿨’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벤 넬슨. 세계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학이 그에겐 준 건 고작 강의실에 갇힌 틀에 박힌 지식뿐이었다. 실망감이 컸다. 대학교육 제도를 개혁하고 싶었지만 그 꿈을 잠시 접고 벤처사업가로 변신한다. ‘스냅피시’라는 기업을 키워 휼렛패커드에 3억달러에 매각하고,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2010년 ‘미래의 학교’로 불리는 ‘미네르바 스쿨’을 설립한다. 캠퍼스가 없는 대신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세계 7곳에 기숙사를 운영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을 보내고, 아르헨티나, 한국, 인도 등 7개 국가에서 몇개월씩 생활하며 3년을 보낸다.

 

수업은 모두 온라인플랫폼으로 진행된다. 등록금은 3만달러 정도로 아이비리그 평균(5만6000달러)보다 싸다. 그런데도 ‘하버드대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으로 불린다. 합격률이 하버드대(4.6%), MIT(6.7%)보다 낮은 1.9%다. 비대면이긴 하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꼼꼼한 수업이 이뤄진다. 교수의 컴퓨터 화면에 학생의 발언빈도가 색깔로 표시된다. 발언이 부족한 학생을 콕 찍어 이해도를 묻는다. 공유 리포트를 통해 토론 등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낸다. 머무르는 도시의 기업·단체와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벤 넬슨은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1시간 30분 강의용 수업계획을 작성하는 데 100시간을 썼다”고 했다.

 

한국판 미네르바 스쿨이 생긴다. 국내 1위 인테리어 업체인 한샘의 창업주 조창걸 명예회장이 사재 3000억원을 들여 미네르바형 ‘태재대학’을 설립한다고 한다. 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메타버스 캠퍼스 형태로 2023년 개교예정이다. 재산의 대물림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변화를 외면해온 국내 대학에 던지는 울림이 묵직하다.

 

2024년 대학 진학 가능 추산 인구는 37만3470명. 올해 입학정원 48만명을 놓고 보면 10만명이나 모자란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부 지원과 등록금에만 의존해온 대학부터 변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캠퍼스로부터 학생들을 밀어낸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