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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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수사 부실 인정하고도… 책임자 단 한 명도 처벌 안해 [심층기획]

용두사미로 끝난 '공군 성추행 사건'

공군 여중사 피해 80일 지나 극단선택
사건 초기 특임군검사 임명 해결 의지
219일 만에 수사 종료… 15명 기소 그쳐

초동수사 담당 20비행단 군사경찰 등
지휘·감독 책임자들 모두 불기소 처분
“직무유기는 아니지만 미진했다” 해명

사건 은폐·2차 가해 등 고질병 드러나
관련자료 확보 등 대응 과정도 비상식적
‘제 식구 감싸기’ 비판 속 변화 노력 시급
국방부 검찰단. 연합뉴스

“이번 수사가 공정하고 정의롭고 인권에 기초한 수사라고 평가할 수 있나.”

“그렇다.”

지난 7일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건 최종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취재진과 국방부 검찰단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이다. 검찰단은 피해자인 이 중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부실 초동수사 책임자 중 단 한 명도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하지 못했다. 검찰단은 초동수사에서 잘못된 점은 있지만, 형사처벌을 할 만한 법리적 입증이 어려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중사 사건은 군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24살 여군 부사관 1명을 향한 성폭력과 협박, 조직적인 2차 가해와 은폐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온 나라가 들끓었다. 서욱 국방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엄정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최종 수사결과는 국민적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몸통은 건드리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린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모 상사가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철저히 외면당한 이 중사

국방부 수사결과에 따르면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으로 근무 중이던 이 중사는 지난 3월2일 상관인 노모 상사가 주도한 저녁 회식에 참여했다. 이후 부대로 돌아오는 차량 뒷자리에서 가해자 장모 중사의 성추행이 시작됐다. 이 중사가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장 중사는 성추행 행위를 반복했다.그는 다음날엔 오히려 “온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중사는 사건 당일 평소 가깝게 지냈던 김모 중사에게 성추행 사실을 토로했다. 다음 날인 3일 오전엔 노 상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전날 방역지침을 어기고 회식을 주도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던 노 상사는 “없던 일로 해줄 수 없겠냐”며 이 중사를 회유했다. 이 중사는 소속반 상관인 노모 준위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지만, 노 준위 역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다 피해가 간다. 너도 다칠 수 있다”며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그런데도 이 중사의 신고 의지가 거세자 노 준위는 결국 같은 날 밤 10시쯤 해당 내용을 정보통신대대장 김모 중령에게 보고했다. 노 상사와 노 준위는 이후에도 이 중사의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장 중사에 대한 합의와 선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 중사는 3월4일부터 5월2일까지 두 달간 청원휴가를 갔다. 이 중사는 청원휴가 대부분을 20비행단 관사에 머물렀다. 이 중사는 2주간 자가격리를 거친 뒤 5월18일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이 중사는 다수의 선임으로부터 2차 가해를 견뎌야만 했다. 결국 이 중사는 5월21일 혼인신고를 한 뒤 20비행단 남편의 관사로 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처음 성추행 피해를 본 3월2일 이후 80일 만에 이 중사는 세상을 등졌다.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부친이 6월28일 경기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 중 이중사의 군번줄을 보여주고 있다. 뉴스1

◆부실수사 책임자 형사처벌 ‘0’

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5월31일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다음 날인 6월1일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재수사에 착수했다. 서욱 장관은 6월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방부 차원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저한테 맡겨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후 검찰단은 7월9일 관련자 22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10명을 재판에 넘겼다며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7월19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본부 검찰단장 고민숙 대령(진)을 특임군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계 민간 전문가 18명을 위원으로 한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했다. 심의위는 6월11일부터 9월6일까지 3개월간 9차에 걸쳐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심의했다.

검찰단은 지난 7일 성추행 사건 발생 219일 만에 모든 수사를 종료하고 최종결과를 발표했다.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한 지 129일 만이다. 수사결과 25명을 형사입건해 이들 가운데 15명을 기소하는 등 총 38명을 문책대상에 올렸다.

하지만 부실 초동수사 관련자들은 한 명도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특히 초동수사를 담당한 20비행단 군사경찰과 군검사, 군검찰 지휘·감독 책임을 맡고 있는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등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 검찰단은 “초동 수사방식을 확인해보니 직무유기는 아니지만 미진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내부적으로도 격론이 있었지만, 직무유기가 성립되려면 의식적으로 수사를 포기하거나 방임했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휘·감독을 안 한 잘못은 있지만 언제, 어떤 행동을 해야 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며 이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한 이유를 해명했다.

 

◆사건 발생부터 수사까지 민낯만 드러낸 軍

이번 사건은 발생부터 수사까지 전 과정에서 군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군에서 여전히 여군을 바라보는 안일한 시선과 만연한 2차 가해,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사건 은폐 등은 이번 사건을 거대한 눈덩이로 키웠다.

그중에서도 군의 사건 대응 과정은 일반적 상식에 어긋난 모습을 반복해서 보였다. 국방부 검찰단은 초동수사 관계자들의 직무유기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관련 정황은 이미 수차례 드러났다. 군사경찰은 사건 초기 블랙박스 등 관련 자료 확보는 물론 가해자에 대한 구속 수사도 하지 않았다. 군검사는 사건을 송치받고도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55일간 가해자 소환조사를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실장 역시 수사 초기였던 3월8일 ‘참고보고’ 형태로 관련 내용을 전달받았고 이 중사가 사망한 5월22일 오전 보고를 받았음에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전 실장은 세 차례나 소환조사 통보에 불응하다 중간 수사발표 이후에야 출석했다. 전 실장의 휴대전화 등 개인 압수물에 대한 포렌식도 상당 기간 늦어졌다. 결과적으로 전 실장을 비롯한 부실수사 관계자들이 법의 칼날을 피하면서 군은 또다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육군본부 군판사와 군사법원장, 고등검찰부장 등을 지낸 임천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성범죄 수사는 신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원칙을 지키지 않아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사고까지 일어난 것 아닌가”라며 “결론적으로 군이 몇 달 동안 뭐했는지도 모르는 수사를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軍, 인식변화 없이 조직만 개편… 실효성 의문

 

성추행 사건 때문에 숨진 공군 이모 여중사의 사례는 군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군은 이 중사의 사망 이후 표면적으로는 변화를 모색하며 재발방지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실효성엔 여전히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체인 공군은 군사경찰단 업무 중 독립적으로 수사 업무만을 전담하는 공군본부 직할부대 ‘공군수사단’을 창설했다. 기존의 부대별로 운영해오던 수사조직을 통합해 중앙수사대 및 권역별 5개의 광역수사대와 과학수사센터로 재편성했다. 기존 군사경찰단은 수사 기능을 제외한 기지 방호, 대테러, 군내 질서유지 기능만을 담당한다. 이번 공군수사단 설치는 ‘국방개혁2.0’에 따른 군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이지만, 이 중사 사건으로 공군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시기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이 중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신고 전 피해자 지원 제도’도 지난달 1일부터 도입됐다. 인사상 불이익이나 피해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서도 심리상담·의료 지원·법률 조언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신고 전이라도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국회는 지난 8월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성폭력 범죄에 관한 수사와 재판의 1심부터 민간이 담당하게 된다. 이 중사 사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구성된 민관군 합동위원회도 지난 13일 성폭력 전담조직 신설, 2차 가해 책임자 처벌 강화 등 또 다른 이 중사 사례를 막기 위한 방안을 다수 마련해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 같은 군의 변화 움직임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반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군의 지금 대응 행태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라며 “군에는 이미 충분한 매뉴얼이 다 있다.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군의 변화 노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냉철한 지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군이라는 폐쇄적인 조직성 때문에 시민사회의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