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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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실직’ 비정규직이 정규직 5배… 고용보험 사각 여전

사업장 규모 작고 임금 낮을수록
노동자들 실직 경험률도 높아져
비정규직 23%만 “실업급여 받아”

5명 중 1명은 비자발적 휴직 겪어
비정규직 54% 소득감소 정규직 3배
“재난실업수당 한시 지급을” 주장

“회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렵다며 3개월 무급휴직을 강요합니다. 무급휴직을 거부하면 쫓겨날 것 같은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달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상담사례다. 코로나19 발생 후 실직·임금 감소 등의 문제를 겪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가운데 특히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저임금 노동자의 고통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실직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 32%(128명), 정규직 6.8%(169명)로 집계됐다. 비정규직의 실직 경험이 정규직보다 5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7∼14일 정규직 600명, 비정규직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실직 경험은 사업장 규모가 작고 임금 수준이 낮을수록 많았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실직 경험률은 26.6%로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9%)보다 3배가량 많았고, 15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의 실직 경험률(28.3%)도 500만원 이상 고임금노동자(5.4%)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이밖에 서비스직(28.4%)이 사무직(8.8%)보다, 비노조원(18.7%)이 노조원(4.1%)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실업급여도 노동자의 상황에 따라 수령률 편차가 컸다. 실직을 경험한 응답자 중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9%였는데, 특히 비정규직의 수령률은 22.7%로 정규직(48.8%)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21.7%)와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66.7%), 저임금 노동자(14.6%)와 고임금노동자(57.1%)의 차이도 컸다.

코로나19로 휴직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5명 중 1명(18.9%)이 코로나19 이후 비자발적 휴직을 경험했고, 이 중 휴업수당을 받았다는 사람은 27%에 그쳤다. 근로기준법 46조에 따르면 비자발적 휴직의 경우 휴업수당으로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비자발적 휴직 경험률은 정규직 11.2%, 비정규직은 30.5%였고 휴업수당을 받은 비율은 정규직 43.4%, 비정규직 18%였다. 직장갑질119는 “회사가 코로나19를 핑계삼아 불법을 일삼고 있는데 정부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지난해 1월과 비교해 현재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 비정규직은 53.5%로 정규직(18%)의 3배 수준이었다. 고임금 노동자(15.4%)와 저임금 노동자(54.5%),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19.3%)와 5인 미만 기업 노동자(46.8%), 사무직(22.2%)과 생산직(38.8%)의 차이도 컸다.

정부의 코로나19 감염 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68.4%로 ‘잘못하고 있다(31.6%)’보다 높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자리 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다(43.9%)’보다 ‘잘못하고 있다(56.1%)’는 응답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정규직(59.5%), 생산직(60.8%),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57.8%)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파가 비정규직 등 취약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정부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정규직만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실직과 소득감소가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등 취약노동자에게 집중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실업급여와 고용유지지원금 등은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가능한데, 이들은 대부분 고용보험제도밖에 있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에 지속적으로 취약노동자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만 적용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이 지나면서 누가 소득이 줄고 누가 실직했는지 관련 기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만큼 한시적으로 ‘재난실업수당’ 등을 신속히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