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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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태아산재 피해자, 개정 산재보험법 소급적용 받는다

고용부, 예외조항 둬 보상 길 열어
국회에 “기존 사례도 적용을” 의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사가 좋았다. 누구나 부러워했던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기쁨은 잠시였다. 그곳 화학물질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일했던 여성 근로자 3명이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에 태아 산업재해 신청서를 접수하며 남긴 말이다. 이들이 출산한 자녀 중 한 명은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태어나자마자 수술대에 올랐다.  다른 두 명은 신장을 한 쪽만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아이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과 치료비로만 한 달에 200만원가량 드는 경제적 부담은 이들을 짓눌렀다.

 

현행법상 노동자 본인에게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돼 ‘2세’는 산재보험 대상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설사 관련법 개정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정부가 법 시행 이전의 태아 산재 피해자들에게는 법 소급 적용에 난색을 표해 보상 받을 길이 요원했다.

 

이처럼 남모를 눈물을 흘려왔을 피해자들이 향후 개정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으로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1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이 발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에 대해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피해 사례도 적용해야 한다”는 수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정안은 노동자의 자녀를 산재보험 수급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정작 삼성 반도체 노동자, 제주 의료원 간호사 등 태아 산재를 호소하며 논의에 불을 붙인 대표 피해자들은 법 혜택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움을 남겼다. 특히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작년 4월 대법원에서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아이의 선천성 질병까지 산재로 인정하는 확정 판결을 받은 터라, 입법 공백 우려가 컸다.

 

고용부는 개정 산재보험법이 법 시행일 이후에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다만, 예외 조항을 둬 소급적용을 인정하는 해법을 마련했다. 즉 법 시행일 전에 △산재보험 청구를 진행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경우 △법원의 확정판결로 자녀의 건강손상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급여지급 거부처분이 취소된 경우 △법 시행 3년 이내에 출생한 자녀로서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산재보험 청구를 진행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경우 등이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6월 국회에 낸 법안 수정 의견서에서 산재보험법의 소급적용에 대해 “시혜적 입법 남발로 비칠 수 있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사회 각계에서 소급적용 요구가 빗발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관측된다. 시민단체 반올림 조승규 노무사는 “오랜 기간 기다려온 태아산재 피해자들이 개정법을 적용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소급 적용될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2일까지 진행될 국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장철민 의원은 “태아산재 예방이 촘촘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산모뿐 아니라 아버지의 유해요인노출 관리 강화 등 후속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안병수·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