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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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재일동포 북송사업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 등으로 ‘내지’ 일본에 끌려간 동포 가운데 60만명은 해방 이후 그곳에 남았다. 해방공간의 극심한 혼란과 6·25전쟁 와중에 남쪽도 북쪽도 택하기가 어려웠다. 돌아가더라도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1959년 인도 캘커타에서 북한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간에 ‘재일 조선인 귀환 협정’이 체결됐다. 경제 재건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북한과 거추장스런 재일동포의 귀국을 원한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해 12월부터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시작돼 1984년까지 총 186회의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 항에서 북한 청진 항으로 향했다. 북송선을 탄 재일동포와 그들의 가족은 모두 9만3000여명에 달한다. 기대와 달리 이들의 삶은 가혹했다. 광산·농장에서 육체노동을 강요당했고 차별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북송됐다가 탈출한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억엔(약 10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의 첫 재판이 14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렸다. 일본 법정에서 처음으로 북한 인권침해를 심리하는 재판이다. 원고인 가와사키 에이코씨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7년 출간한 실화소설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불찰이었다”고 토로했다. “그 격렬한 전쟁이 끝나고 7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가. 공화국 선전에 자그마한 의심도 품지 않았던 조총련이 너무 경솔하였던 것이다.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돌아갈 수 없는 편도 차표인 것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외국인을 내 나라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해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북송 동포는 일본과 북한에서 모두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북송사업은 재일동포를 속인 북한과 재일동포를 몰아내려 한 일본 정부가 한통속이 돼 벌인 비극이다. 북송사업을 막지 못한 우리 정부가 이제라도 관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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