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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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청와대는 중요한 걸 놓쳤다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 國務/국회 평양동행은 삼권분립 훼손/만장일치는 민주주의 아니다/초당적 지지 위해 더 노력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단과 함께 오늘 평양을 방문한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동행한다. 국회의장단과 다른 야당 대표들도 함께 평양행 비행기를 탔더라면 보기 좋았을지 모르겠다. 그랬더라면 청와대가 기대하는 대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 교류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고 옳은 일이라면 국회와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박수를 보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를 위한 대통령의 요청을 고작 자존심을 앞세워 보이콧한다면 옹졸한 처사다. 그러나 돌아볼 구석이 있다. 평양 동행 요청은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과 민주주의 차원에서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김기홍 논설위원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의 국무 수행의 일환이다. 대통령이 수반으로 있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란 얘기다. 행정부는 국무를 집행하고, 입법부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요체요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문 대통령은 4·27 남북정상회담을 국무수행의 일환으로 한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 국회비준을 요청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무집행에 국회가 함께해 서명하고 보증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회와 여야대표가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동행하는 것 자체가 국회가 남북 합의와 같은 국무집행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통령과 외국 정상 간 만찬에 국회의장이나 여야 대표가 참석하는 단순 의전행사와 같을 수는 없다.

국회의장단과 두 야당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로 초청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당리당략”으로 폄하했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보탰다. 남북정상회담이 민족사적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국회가 대통령의 국무수행에 함께해야 한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나의 행동이 옳으니 나를 지지해 달라는 사고방식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독선과 오만이 민심을 가린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다. 반대하는 국민이 있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면 ‘하나의 의견으로만 획일화되는 위험한 결과’를 피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는 크고 작은 동심원들이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계절의 변화가 많은 곳일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그런 나이테들이 굵어지면서 나무를 한층 튼튼하게 한다. 민주주의 성장과정은 고목 한 그루의 성장과정을 닮을수록 좋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이 미국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다. 미 해군병사 2000여명과 민간인 400명 등 2400여명이 숨졌고 1200여명이 다쳤다. 미국 국민은 분노했고 진주만 기습 이튿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어제인 1941년 12월 7일, 이날은 ‘치욕의 날(the day of infamy)’로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며 대일 선전포고에 대한 의회 승인을 요청했다. 일본 응징에 대한 미 국민의 결의는 단호했고 예상대로 상원은 만장일치로 선전포고안을 가결했다. 마찬가지로 만장일치를 확신했던 하원에서는 그러나 388대 1로 반대표가 한 표 나왔다. 반전주의자로서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의 지넷 랭킨 의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제도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하나의 현안을 두고 하나의 의견으로만 획일화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낳습니다.”

청와대는 국회의장단·정당대표 초청 논란에 대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성의를 다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놓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 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고 북·미대화의 교착도 풀어야 한다”면서 초당적인 지지를 강조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놓친 것이 크기에 하는 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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