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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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대한민국 임시정부, 고난의 흔적들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4월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 대표들이 체계적인 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1989년 12월 30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후, 1990년부터 2018년까지는 4월 13일을 기념일로 하였지만,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1922년 달력에 4월 11일을 ‘헌법발포일(憲法發布日)’로 기록한 것이 발견되면서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변경하였다.

상하이의 임시정부는 1932년 5월 항저우(杭州)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의 감시망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김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가싱(嘉興)으로 피신했다. 5월 10일에는 임시정부 청사도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겼고, 1935년 11월까지 3년반 동안 사용되었다. 1935년 11월 전장(鎭江), 1937년 난징에서 우한(武漢)을 거쳐, 1937년 11월 창사(長沙)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는 고난의 여정을 계속했다. 1938년 7월 다시 광저우(廣州)로, 1938년 11월 류저우(柳州)로, 1939년 5월 구이양(貴陽)과 치장(?江)으로 청사를 이전했으며, 1940년 9월 마침내 충칭에 도착했다. 여러 차례 거점을 옮기는 장정(長征)을 거듭한 끝에 8년5개월 만에 충칭에 도착한 것이었다. 충칭에서도 임시정부는 네 차례 청사를 옮겼고, 해방을 맞이한 마지막 청사는 ‘연화지(蓮花池) 청사’였다.

1945년 8월 15일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치열하게 전개된 독립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그 중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임시정부 하면 대개 상하이가 떠오르지만, 실제 임시정부는 중국에서도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항쟁의 역사를 지속해 나갔다. 그만큼 험난한 상황들이 연속되었기 때문이다. 상하이, 항저우, 광저우, 충칭 등 중국의 여러 지역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청사 유적들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