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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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의 처칠 따라하기?… "처칠도 전시엔 그림 꾹 참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휴양지서 그림 그려
英 가디언 “윈스턴 처칠 따라하기냐” 지적
처칠, 2차대전 6년간 그림 딱 한 장만 남겨
그마저 美 루스벨트에 선물… “외교적 수단”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왼쪽)와 보리스 존슨 현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영국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휴가 중 한가롭게 그림을 그리는 사진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존슨 총리는 평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를 맡아 영국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874∼1965)에 각별한 존경심을 표시해 왔는데, 이번 행동도 아마추어 화가로 유명했던 처칠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존슨 총리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처칠도 2차대전 기간 동안엔 그림 그리기를 최대한 자제했다”며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총리가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스페인 남부 마르베야 지역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는 동안 숙소인 빌라에서 그림을 그렸다. 영국 일간 ‘미러’ 등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존슨 총리는 빌라 마당에 이젤을 설치하고 한가로운 표정으로 붓을 놀리고 있다.

 

마침 이 사진은 영국 의회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행정부 대응에 나타난 문제점을 조사해 펴낸 보고서 내용이 알려진지 하루 만에 공개됐다. 해당 보고서에는 “정부가 코로나19 집단면역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치명적 오판 탓에 사망자 수가 늘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영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누적 인원은 13만8000여명이나 된다. 미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러시아, 페루,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수치다.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스페인 마르베야 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CNN 방송 캡처, 뉴시스

당장 영국의 코로나19 유족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나섰다. 유족 단체 대변인은 “존슨 총리가 고급 빌라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우리들은 매우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차대전의 영웅 처칠을 숭배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존슨 총리 특유의 기질이 발휘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처칠은 평생에 걸쳐 그림을 그렸고 일부 작품은 ‘상당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마추어 화가로서 처칠은 종종 전시회도 열었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로나19 등으로 나라가 힘든 판국에 휴가를 떠난 존슨은 그의 영웅 윈스턴 처칠을 따라하며 그림 그릴 시간까지 가졌다”고 보도했다.

 

처칠이 아무리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도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국난 시기에 존슨 총리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평생 붓을 놓지 않은 처칠이었으나 영국의 운명이 걸린 2차대전(1939∼1945) 당시엔 6년 동안 딱 한 장의 그림만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1943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그린 풍경화인데 이마저도 처칠은 자신이 소장하는 대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생일 선물로 보냈다. 영·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려는 외교적 노력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훗날 처칠은 이 사실을 회고록에 적으며 “전쟁 중에 내가 그린 유일한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