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김환기칼럼] 김만배의 길, 박종명의 길

金, 기자직·기사 사익 위해 사용
재판 거래 등 의혹 언론계에 상처
朴, 대장동 개발 특혜 특종 보도
징역·벌금 각오하고 진실 추구

“법률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나 필봉(筆鋒)의 힘은 더욱 위대하다.”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이다. 건강한 국가와 사회를 만드는 데 법률보다 언론의 기여도가 더 크다는 뜻이다. 대다수 기자는 권력 감시자, 역사 기록자, 약자의 대변자라는 언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명감과 자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키맨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선임기자는 기자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김씨는 지난 9월 퇴직 전까지 기자와 부동산 개발사업자 투잡을 하며 투자액 대비 천 배 이상을 벌어 성실하게 일하는 기자들을 ‘무능한 아빠’로 만들었다.

김환기 논설실장

자산관리사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씨와 자회사 천화동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정영학 회계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은 대장동 토지주와 아파트 분양자, 성남도개공에 귀속돼야 할 7000억원을 약탈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권순일 전 대법관 등 전관 법조인들도 방패막이가 돼주고 떡고물을 챙겼다. 정치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이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는 한국이 선진국이 맞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김씨가 기자직과 기사를 사익 추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몰염치한 행위다. 2014년 7월 28일자 머니투데이에 실린 이재명 성남시장(현 경기지사) 인터뷰부터 그렇다. 지방자치단체 담당 부서장이 아닌 법조팀장이 대담 인터뷰를 한 것은 언론사의 취재 관행에 어긋나 저의를 의심케 한다.

질문도 정치가로 변신한 계기와 포부, 재선 성공 이유, 어려웠던 가정형편 등 법조와 관련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씨가 7개월 후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화천대유를 설립하고, 사업의 최종 결재권자가 이 시장인 점을 감안하면 인터뷰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씨의 재판거래 의혹 해명도 모순투성이다. 이 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전후에 권 전 대법관을 8차례나 만난 건 누가 봐도 의아하다. 김씨는 대법원 출입신고서에 권 전 대법관 이름을 적고 구내 이발소에 갔다고 했지만 대법원의 해명으로 거짓말로 드러났다. “3, 4차례 방문했는데 재판 관련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신뢰가 안 간다. 당당하다면 긴급히 상의했어야 할 일이 뭔지 밝혀야 할 것 아닌가.

대법원 출입기자를 해봐서 안다. 대법관은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기사가 나올 게 없어 찾아갈 일이 별로 없다. 기사가치가 높은 대법원 판결들은 엠바고를 걸어 놓기 때문이다. 이 지사 무죄 취지 토론을 주도한 권 전 대법관이 퇴직 후 화천대유에서 월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고, 이 지사 변호를 맡았던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이 화천대유의 자문 변호사로 활동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김씨의 해명은 취재 시스템과 관행을 잘 아는 동료 기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중간에서 브로커 노릇을 한 듯하다”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은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다행인 것은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기자가 자칫 묻힐 뻔한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는 점이다. 박 기자는 제보를 토대로 지난 8월 31일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화천대유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이재명 후보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입소문이 있다”는 제보자의 주장이 보도되자 화천대유의 거센 반격이 들어왔다. 고민이 왜 없었을까. 명예훼손 혐의 형사 고소와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작은 인터넷 매체인 경기경제신문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박 기자는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징역형과 벌금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었다. 언론의 사명감 하나 갖고 했다.”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박 기자의 특종 기사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수서택지 비리, 최순실 국정농단을 세상에 드러내 사회 정의와 법치를 바로 세운 보도들과 비견된다. 언론의 힘은 진실과 공익 추구에서 나온다. 언론의 존재 의미를 일깨운 박 기자의 기자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