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바이든 떠나자 미사일 쏘아올린 北… 정부 “국제적 고립 자초”

평양 일대서 동해로 3발
단거리와 섞어쏘기 처음

尹 대통령 첫 NSC 주재
“확장억제 실질 조치 할 것”

‘대북 강경’ 韓·美 공조 시험대 올라
바이든 귀국길… “수위조절” 평가도
대통령실 “국내정치 일정 개입 시도”
中·러 카디즈 침범 다음날 北 도발
韓·美·日 vs 北·中·러 대치 본격화
북한이 25일 오전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발사체 등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한 가운데 한·미 군 당국이 동해상으로 ‘현무-2’ 탄도미사일(왼쪽 사진)과 전술지대지미사일 ‘에이태킴스’를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일본 순방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25일 오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3발을 쐈다. 신형 ICBM(‘화성-17형’)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인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섞어 쏘면서 최근 한·미, 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천명한 한·미·일에 ‘맞불’을 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양국은 핵기폭 장치 작동 시험 등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보고 긴밀한 연합 대응태세 점검에 돌입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이날(25일) 오전 6시, 6시37분, 6시42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뒤 워싱턴에 도착하기 2시간 전이다.

 

가장 먼저 발사된 것은 ICBM 추정 탄도미사일로, 비행거리는 약 360㎞, 고도 약 540㎞, 속도는 마하 8.9로 탐지됐다. 군은 지난 3월 발사에 실패한 적이 있는 신형 ‘화성-17형’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단 추진체의 연소가 일정 부분 이뤄졌고 단 분리도 이뤄졌다고 분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3번째 탄도미사일은 KN-23 SRBM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미사일은 고도 약 20㎞에서 군 탐지자산으로부터 사라져 발사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 미사일은 비행거리 약 760㎞, 고도 약 60㎞, 속도 마하 6.6으로 탐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취임 이후 첫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 정상 간 합의된 확장억제 실행력과 한·미 연합방위태세 강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당국은 즉각적인 미사일 대응 발사에 이어 양국의 긴밀한 안보 공조에 나섰다. 한·미 미사일부대는 이날 오전 10시20분쯤 한국군 현무-II 탄도미사일, 미군 에이태킴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을 1발씩 동해상으로 쏘는 연합 지대지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했다. 한·미 당국이 북한 도발에 공동대응한 것은 2017년 7월 이후 4년 10개월 만이다. 공군은 전날 F-15K 전투기 30여대가 무장한 채 지상활주하는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현지시간)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통화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통화하며 한·미 연합방위태세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추가 도발에 대비한 미 전략자산 전개,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조기 개최 필요성을 논의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대응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유관 각측이 자제를 유지하고 최대한 빨리 의미 있는 대화를 재개하고 각자의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는 방법을 탐색하길 희망한다”며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1차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 다른 장소에서 핵실험을 위한 핵 기폭장치 작동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 탐지되고 있다”며 “기폭장치 시험을 몇 주에 걸쳐 지속하는 것으로 봐서 북한 나름대로 실패하지 않을, 원하는 규모와 성능을 평가하는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 단계가 임박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후 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첫 NSC다. 대통령실 제공

◆‘ICBM·단거리’ 한꺼번에… 한·미·일 동시타격 능력 과시

 

북한이 25일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3발을 섞어쏘기 방식으로 발사하면서 한·미, 미·일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대북 강경 기조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강 대 강’ 맞대응 전략을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도발에 이어 7차 핵실험까지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대북 강경 기조 맞대응… 국내 정치일정 개입 분석도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평양 순안 일대에서 오전 6시에 ICBM 추정 탄도미사일 1발을 쏘고, 약 37분 뒤에는 KN-23으로 추정되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5분 간격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과거에 기종이나 비행거리가 다른 미사일을 섞어서 쏜 적은 있지만, ICBM까지 섞어 쏜 것은 처음이다. ICBM으로 미국을 압박하면서 단거리탄도미사일로 한·일을 위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전인 19일 새벽부터 ICBM에 연료를 채워 넣는 정황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급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액체연료 ICBM의 특성을 이용해 바이든 대통령 방한 전부터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주목도를 높인 뒤, ICBM을 쏘면서 기습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탑재 SRBM을 함께 발사해 한·미·일에 대한 압박 강도를 극대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상황에서 발사했다는 점에서 수위 조절은 했다는 평가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방문이 끝나고 귀국하는 시점을 명확히 겨냥한 도발”이라며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에는 도발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따랐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이번 도발이 새 정부의 군사대비태세를 떠보면서 국내 정치 일정에 개입하려는 시도라는 입장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그간 해 왔던 핵·미사일 개량 과정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임박한 한국 국내 정치 일정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아닌가”라며 “새 정부의 안보대비태세를 시험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공군 F-15K 전투기 30여대가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벌이고 있다. 엘리펀트 워크는 다수 전투기가 최대 무장을 장착하고 밀집 대형으로 이륙 직전 단계까지 지상 활주하는 훈련이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미·일, 북·중·러 대치 본격화… 제7차 핵실험 가능성 높아져

 

북한의 ICBM 발사는 동아시아를 둘러싼 한·미·일, 북·중·러 대치 국면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지난 24일 한국·일본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등 무력시위를 감행한 상황에서 북한이 ICBM을 발사한 것은 중·러의 한·미·일 안보협력 견제에 동참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이 추가로 전략적 도발에 나선다면 이 같은 구도가 굳어질 위험이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러 갈등이 깊은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추가 제재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중·러가 대립하고, 북한이 이를 틈타 전략적 도발을 지속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미·중, 미·러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유엔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은 난항을 겪을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일, 북·중·러라는 신냉전구도가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추가로 전략적 도발에 나서면, 제7차 핵실험이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2017년 7월 ICBM 화성-14형을 시험발사 한 뒤 같은 해 9월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ICBM 발사 직후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는 다른 곳에서 제7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한 핵 기폭장치 작동시험을 한 정황이 탐지됐다. 핵 기폭장치는 핵물질을 임계치 이상으로 압축, 고온에서 연쇄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사실상 핵실험 전 단계로 해석되는 과정이다. 핵실험을 위해서는 핵 기폭장치의 정밀성과 신뢰성 검증이 필요해 작동시험을 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 한·미도 미군 전략자산 전개나 연합훈련 재개 등을 포함한 고강도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25일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발사체 표현 지우고 ‘미사일’ 즉시 공지… 정부 “北 고립만 자초” 별도 성명도 발표

 

2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무력 도발로 새 정부의 신속한 대응태세가 이목을 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쏜 지 30분여 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최를 결정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오전 6시 임박해서 일어났는데 6시3분에 대통령께 보고드렸고, 10여분 지나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유선으로 대통령께 전화를 드려 회의체를 어떻게 할지 점검하고 있으니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를 드렸다”며 “6시30분에 NSC 개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오전 7시35분부터 8시38분까지 NSC를 주재했다. 북한이 이날 6시, 6시37분, 6시42분쯤 탄도미사일을 3차례 쏜 가운데 신속하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이 지난 12일 평양 순안 일대에서 ‘초대형 방사포’(다연장 로켓의 북한식 명칭)로 추정되는 단거리탄도미사일 3발을 쐈을 당시엔 김 실장 주재로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열린 NSC는 2번이고, 이번에 윤 대통령이 첫 주재를 한 것이다.

 

이번 윤 대통령 주재의 첫 NSC가 열리면서 북한 도발에 대한 현 정부와 전임 정부의 대응 자세도 주목받고 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북한 미사일 도발에 NSC를 직접 주재한 경우가 적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가 북한 관련 긴급 NSC 및 관계장관회의를 연 것은 총 69번인데, 이 중 문 전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것은 18번(26.1%)에 불과하다.

 

문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도발을 ‘도발’이라고 적시하지 못해 뒷말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상 발사체’ 또는 ‘불상 발사체’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는 이날 ‘발사체’ 대신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라고 공지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도 별도로 발표했다. 정부는 성명에서 “북한의 지속된 도발은 강력하고 신속한 한·미 연합 억제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NSC 전체회의를 거친 뒤 공식 성명을 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김 1차장은 브리핑에서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한 윤 정부의 3원칙이 있다”며 “북의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ICBM인지를 파악해서 정확히 기술하겠다는 것과 북의 군사조치가 있을 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한국의) 후속조치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지막은 이런 행동을 한·미 군사협조 태세로 함께 실천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상황을 관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찬·이현미 기자, 워싱턴·베이징=박영준·이귀전 특파원, 김범수·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