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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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혁신기구 출범도 전에 좌초… 李 리더십 치명타… 내홍 재점화 [민주 혁신위원장 9시간 만에 사퇴]

이래경 사퇴 파장

‘돈봉투’ 등 국면 전환 시도 자충수
당내 “지도부 무능력” 비판 목소리
非明 박광온 원내대표에 힘 실릴 듯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가상자산 투자 논란으로 위기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면 전환을 위해 띄웠던 당 혁신기구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꼴이 됐다. 이재명 대표가 5일 혁신기구 책임자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발표한 지 한나절도 안 돼 이 이사장이 막말 논란에 휩싸여 자진 사퇴하면서다. 당 혁신에 대한 이 대표 주도권이 명분을 잃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 간 계파 갈등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당내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지도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이 이사장 사퇴 발표 직후 기자와 만나 “X인지 된장인지 알아보고 천거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 필터링이 전혀 없었다”며 “(이 이사장이)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오전에 사퇴할 줄 알았는데 오래 버텼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을 친명계 인사로 간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다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당내 혁신이 자기를 향할 걸 걱정해 제 입맛에 맞는 인물을 세우려다가 실패한 것”이라며 “앞으로 계속될 혁신 논의에서 이 대표의 목소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2019년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무죄 탄원을 요구했던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민주당의 혁신 논의는 비명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원내대표가 선출된 이후 점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박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쇄신 의원총회 개최를 약속하고 실제 의총을 열어 새 혁신기구 구성의 뜻을 모아 냈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간 당 혁신을 둘러싼 샅바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친명색이 짙은 이 이사장이 낙마하면서 박 원내대표에게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이 이사장 논란으로 이 대표에 대해 신뢰가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어찌 당의 운명을 맡길 수 있겠냐는 불만이 비주류에서부터 앞으로 계속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민주당 혁신기구가 들어설 경우 당내 도덕성 기준을 쇄신하는 게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상황이다. 당명 변경이나 대의원제 폐지 등도 과제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 총선과 관련한 공천 규칙 등은 이미 특별당규로 확정된 만큼 공천 규칙 수정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지난 5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혁신기구 선례로 자주 거론되는 2015년 김상곤 혁신위는 △막말 등 해당 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 마련 △부정부패 등으로 직위 상실 시 재보선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 당직 박탈 규정을 마련한 바 있다. 이 대표 ‘방탄’ 논란이 일었던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 시, 당직 정지’라는 당헌 80조도 이때 마련된 조항이다.

대의원제 폐지 혹은 축소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의원제 폐지는 ‘개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층과 현재 주류로 올라선 친명계 인사들이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당원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구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는 대의원제가 숙의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면서 존속을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당내 의결권 다툼’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 기준 민주당 전국 대의원은 1만5000여명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친문계로 알려져 있다.


김현우·김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