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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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 마약 소비지 넘어 ‘제3국 수출 허브役’ 경고등 [심층기획-마약 신흥시장 떠오른 한국]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 급증

국내 소비층 확산… 구매력도 높아
국제 마약조직의 거래 타깃 부상
2022년 1200만명 동시투약분 반입

마약통제국 악용… 경유 마약 활개
부산항서 환적 수십∼수백㎏ 달해

사범 저연령화·파생범죄도 심각
“수사역량 확보… 원천차단 나서야”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외국산 마약 압수량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위험부담을 안고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보다 택배 상자에 담긴 ‘수입품’을 들여오는 것이 마약사범들 입장에선 보다 효율적이고 ‘남는 장사’여서다.

국내 마약 수요 증가는 마약의 밀반입량을 증가시키고, 이를 최종 구매자에게 비대면으로 전달하는 배송책 구인으로 이어지는 등 마약 유통 과정상 ‘파생범죄’까지 양산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 보긴 어려워도 ‘마약 통제국’인 점을 악용해 제3국 마약 수출의 경유지로 삼는 해외조직도 활개 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세계일보가 김영주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실을 통해 법무부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간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 현황’은 이미 한국이 세계 각국의 마약사범들에겐 ‘구매력’이 높고 ‘소비층’도 확산하고 있는 마약류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한 해에만 1200만명 이상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마약류가 밀반입된 것으로 집계됐지만, 적발되지 않은 마약류 거래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확한 국내 마약 유통량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달 27일엔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마약모임에 참석한 현직 경찰관이 마약을 투약한 후 추락사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마약은 공적 영역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우선 수사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어떻게든 한국으로 마약류를 들여오려는 세력의 ‘유통망 다변화’ 시도가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필로폰의 경우 지난해엔 라오스(4만5614.79g)에서 한국으로 밀반입된 양이 가장 많았다. 2018년엔 대만(17만4298g), 2019년 말레이시아(2만9708g), 2020년 미국(1만8155g), 2021년 멕시코(40만4230g)에서 가장 많이 밀반입됐다.

대마초의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밀반입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는 태국(2111.97g)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폭증했다. 불과 1년 전인 2021년 2g이었던 것에 비해 1055배나 증가한 양이다. 지난해 6월 태국이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가정 재배도 허용하는 등 합법화한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수사 관계자는 “특정 국가에서 밀반입이 이어지는 경향이 발견돼 그 나라에서 오는 물건을 한동안 전수조사했다”며 “그 결과 마약조직까지 특정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 적발되니 국내 마약사범들도 그 나라 물건은 안 받더라”고 했다. 다만 이것은 단기적 경향일 뿐 장기적으로 보면 특정 국가에서 상시로 우리나라에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유통하려 시도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일부 해외조직은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마약 통제국’이어서 한국발 선박에 대한 검사가 다소 허술한 점을 노린 조직이 부산항에서 환적시킨 마약을 제3국으로 ‘수출’하고 있단 것이다. 이를 ‘경유 마약’이라 하는데, 단위가 수십∼수백㎏에 달하는 것으로 사정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관세청 등이 첩보를 입수해 확인, 적발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항만이 마약조직에 ‘수출 허브’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마약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마약사범의 저연령화 징후도 포착된다.

2019년 239명 수준이던 19세 이하 마약사범은 2020년 313명, 2021년 450명, 2022년 481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는 6월 기준 308명에 달해 연말엔 얼마나 더 많은 청소년 마약사범이 집계될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약의 주요 소비층은 20·30세대였다. 이들 세대는 매년 마약류 사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집계된 결과를 보면 20대는 3150명, 30대는 2545명이었다. 이 밖에 40대는 1643명, 50대는 1131명, 60대 이상은 1294명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에 마약사범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사범 수사 역량을 보다 많이 확보해 우리 국민의 마약 접근 자체를 원천 차단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더 이상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고 보기 힘들 수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를 통해 제3국으로 ‘수출’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마약 신흥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어 관계당국의 특별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민영·김현우·최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