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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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죽음을 지원한다?

누구나 ‘9988234’ 꿈꾸는 세상
프랑스선 최근 죽음 지원법 발의
‘웰다잉’ 관련 사회적 논의 필요
당사자 의지가 중심 돼야 할 것

친구가 아직 한창인 남편을 잃었다. 친구는 남편과 사이가 좋았으니 이별이 더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충격적 소식에 나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 남편의 시간은 가고, 오롯이 너의 시간이 남았구나. 애별리고의 시간, 많은 감정이 올라올 거야. 아픔, 슬픔, 박탈감, 그리움, 그런 감정이 너무 커서 두려워 도망가고 싶어질지도 몰라. 두려움까지도 오롯이 느끼길, 너는 감정보다 크니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나는 친구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시간에 들었음을 알고 있다. 살면서 내가 배운 것은 ‘나’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사람의 가장 진정한 벗은 자기 자신이니 자신을 사랑해 주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이라고.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살다 보면 가난할 수도 있고, 외로울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은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알고 있다. 생산성이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존재’다.

‘75세 이상 국민에게 국가가 죽음을 권하다’라는 부제를 단 영화 ‘플랜75’를 보았는지. 영화는 노인 복지 시설 살상 사건에서 시작한다. 범인은 시설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흉기 테러를 감행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넘쳐나는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들이 받고 있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를 끼치기 싫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일본인은 옛날부터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을 계기로 모두 진솔하게 논의하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범인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극단적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영화가 거기서 시작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거기에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씌우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 있는 것이다. 누가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인가?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인가? 모든 것을 경제적 수치로만 환원해서 사회가 떠안는 부담만 강조하면 그 이해타산에 집중하느라 삶의 중요한 진실들을 잃어버린다.

부의 뿌리는 가난이고, 늙음의 뿌리는 젊음이다. 그러니 노인을 존중하는 일은 우리 삶의 미래를 돌보는 일이고, 젊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은 자신을 사랑하고 생을 축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경제적 부담만을 계산해서 죽어도 좋은 노인층을 가려내려 하다니, 그 어처구니없는 일이 합리적으로 들리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보여 주는 증거이겠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있지만 죽어도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이 있지만 안락사시켜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노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9988234를 꿈꾸는 사회에 살면서도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일을 피할 수 없으니 어떻게 늙고 어떻게 죽어 갈 것인가, 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고통이 완전히 삶을 삼키는 난치병 때문에 진심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웰다잉의 중요한 논제다.

얼마 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죽음을 지원하는 법’을 발의했다. 존엄사 혹은 안락사의 프랑스적 해법을 제시한 법안이라 평가된단다. 난치병으로 무진장한 통증을 겪고 있으면서, 예후가 지극히 부정적인 경우에, 분별력을 지닌 성인의 자발적 결정이 있으면 죽음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프랑스에서 찬반양론이 뚜렷하다는데, 웰다잉이 논의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 논쟁은 무엇보다도 삶을 스스로 책임져 온 바로 그 사람,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는 그 사람의 의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