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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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만시지탄(晩時之歎)과 기후 변화

벚꽃 축제 앞당긴 지자체 ‘낭패’
기온변동성 증가 예측 못한 탓
EU 탄소 국경 조정 제도 맞춰
철강 등 수출기업 대응 나서야

만시지탄(晩時之歎)은 늦을 만(晩), 때 시(時), 갈 지(之) 그리고 탄식할 탄(歎)의 한자로 구성되어 있는 사자성어로 때가 이미 늦었거나 또는 시기를 놓친 탄식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3월은 어떤 측면에서 만시지탄을 생각나게 하는 한 달이었던 것 같다. 바로 벚꽃 축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벚꽃은 봄철 벚나무에 맺히는 꽃으로 분홍색 또는 하얀색 꽃잎이 일반적이다. 벚꽃의 대표적인 꽃말은 아름다운 정신,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본, 중국 등 북반구 온대지역 전역에서 핀다. 올해 우리나라 최대 봄꽃 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시작된 지난달 23일 진해 지역 벚나무의 개화율은 10%에 불과하였다. 참고로 벚꽃의 개화 시기는 관측 표준목의 한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필 때를 의미한다. 비슷한 상황은 진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남 지역의 경우에도 벚꽃의 개화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꽃 축제의 시기를 앞당겼으나 축제 시기에 맞춰 벚꽃이 피지 못하고 꽃망울만 맺혔다고 한다. 봄꽃 축제를 준비하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 벚꽃 개화 시기가 늦어지면서 벚꽃 축제의 정확한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예상욱 한양대 ERICA 교수 기후진단

올해 3월 날씨의 가장 큰 특징은 큰 일교차와 더불어 한 달 내내 일 기온 변동성이 매우 큰 값을 가진 것이다. 사실 정반대의 현상이, 그러나 동일하게 벚꽃 축제의 적절한 시기를 놓쳐 버린 일은 작년 2023년 봄에도 있었다. 2023년 3월은 극단적인 고온 현상 때문에 벚꽃의 개화가 평균적인 시기보다 훨씬 빨라 전국적으로 벚꽃이 다 진 후 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2023년 3월 전국 평균기온은 9.4도로 평년보다 3.3도 높은 역대 1위의 고온 현상을 기록하였고 부산, 대전, 청주 등 일부 주요 도시에서는 관측 이래 벚꽃이 가장 빨리 개화하였다.

 

벚꽃 축제 시기를 놓쳐 버린 배경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겨울을 지나 봄의 초입에 해당되는 3월 날씨가 최근 매우 변덕스럽게 변하는 현상은 자연적인 날씨 변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기후과학의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변화하는 날씨 또는 기후 특성은 평균의 변화가 아니라 변동성의 변화다. 특히 최근 연구 결과들은 매일매일의 기온 변동성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일(日) 기온 변동성의 증가에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생태계와 보건 분야임을 지적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3월 일 기온 변동성의 증가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그 결과 평균적인 개화 시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현상이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일 기온 변동성의 증가는 지역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되었다.

 

최신 기후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79년 이후 지난 40여년 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3월 일 기온 변동성의 크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런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지구 온난화와 대규모 대기 순환의 변화라는 것이다. 특히 3월 동아시아 지역 남북 방향의 기온 경도(傾度)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위도 기압계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3월 일 기온 변동성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임을 제시하였다. 사실 올해 3월에도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고·저기압계의 활동이 커지면서 변덕스러운 날씨가 지속되었고 그 결과 벚꽃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늦어진 것이다. 올해 벚꽃 축제 사례는 기후 변화에 기인한 날씨와 기후 변동 특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이해가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계획하는 다양한 계절 축제들의 성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 대응은 비단 지자체에 국한되어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실례로 유럽연합(EU)은 기후 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2023년 10월부터 탄소 국경 조정 제도를 발효하여 2025년 12월까지 보고 의무를 이행하고 2026년 1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예고하였다. 철강을 포함하는 대상 품목을 EU로 수출할 때 제품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고 배출량에 따른 인증서 구매가 2026년부터 의무화된다. 내후년부터 국내 철강, 알루미늄 등 수출 기업들이 EU에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5300억원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대응이 결코 만시지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상욱 한양대 ERICA 교수 기후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