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세계포럼] ‘절대의석’이 부른 삼권분립 위기

巨野 ‘사법부 민주적 통제’ 공언
거부권 무력화 ‘원 포인트’ 개헌도
행정부 권한 침해 위헌이자 월권
보복정치는 민심 이반 불러올 것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권력도 같은 이치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액턴은 권력의 속성을 콕 집어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민주정치에서 권력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고 도입한 것이 이른바 ‘삼권분립’이다. 프랑스 계몽시대 정치철학자인 몽테스키외의 저서 ‘법의 정신(1748년)’에서 나온 말이다. 삼권분립 원칙이 절대권력과 정치불신을 전제로 한다는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대한민국 역시 엄연한 삼권분립 국가다. 헌법 66조와 101조, 111조에 국회의 입법권과 정부의 행정권, 법원의 사법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취지다.

김기동 논설위원

22대 국회가 문을 열기도 전에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기고만장이 볼썽사납다. 입법부를 넘어 행정, 사법까지 손아귀에 넣고 흔들려고 한다. 사법부에 대한 겁박은 노골적이다. ‘대장동 변호사’ 출신인 김동아 당선자는 친야 유튜브 방송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기간 재판 출석에 대해 “사법부 개혁을 넘어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재명 재판’에 압력을 넣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문재인정부 시절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통해 당시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의 칼날을 꺾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부터 일선 판사까지 사법부 구성원을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둔 이유는 자명하다. 독립적·중립적 지위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라는 사람이 모를 리 없다. 재고할 가치도 없는 망언이다. 벌써 범야권이 ‘4·10’ 총선 결과를 내세워 수사·기소 분리와 경찰국 폐지 등 이른바 ‘검수완박 시즌2’를 공언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총선 승리가 면죄부는 아니다. 선거는 선거일 뿐 유무죄는 반드시 가려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권력일수록 더 엄격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을 통제하려는 위헌적 발상도 서슴지 않는다. 국회의장 출마 의지를 밝힌 6선의 조정식 의원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하는 국회 재표결 요건을 기존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원 포인트’ 개헌을 언급했다. 헌법까지 바꾸는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대상이 대통령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급기야 이 대표는 ‘처분적 법률(處分的 法律)’ 등 입법을 통해 신용 사면·서민 금융 지원 정책을 추진하자고 밝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 법률과 달리 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의 재판 같은 절차 없이 입법만으로 특정 집단에 한해 집행력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입법부(국회)가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행정부의 역할을 하겠다는 건 월권이다.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면 평등권 침해 등 위헌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행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이 문 정부 시절엔 삼권분립의 견제 의무를 방기하더니 이번엔 오버하고 있는 꼴이다. 문 정부가 재정은 외면한 채 선심용 돈 뿌리기를 남발했지만 국회 권력을 쥔 민주당은 행정부 견제 기능을 잃고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삼권분립은 자유민주주의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철칙이다.

 

윤석열정부와 여당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총선 참패를 ‘승자독식’의 소선구제 탓이라고 강변(?)해 봤자 엎질러진 물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건 명확한 사실이다. 인사 난맥, 반윤(反尹) 내치기, 김건희 여사 스캔들 등 ‘불통정치’에 분노한 국민의 심판은 매서웠다. 21대(104석)보다 많은 108석을 얻고 ‘개헌저지선은 사수했다’, ‘낙동강 전선은 지켰다’고 안도해서는 곤란하다. 뼈를 깎는 반성과 개혁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도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친명 경쟁’, ‘이재명 구하기’로 대변되는 사당화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다. 돌고 도는 게 민심이다. 국회의 입법권은 존중하되 국민이 공감할 법률을 만드는 게 도리다. ‘절대의석’을 복수의 도구로 삼아 탄핵정치만 남발한다면 거센 민심의 역풍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