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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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첫 영수회담서 ‘尹 거부권 사과’ 요구하면 대화가 되겠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영수회담 의제를 놓고 양측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양측은 그제 실무협의에서 의제 선정을 놓고 이견을 노출하며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회담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회담이 열리더라도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영수회담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국을 더 꼬이게 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만큼 오늘 열리는 2차 실무회담에서 양측은 한 발씩 양보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13조원 규모 추경과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야권이 추진한 각종 법안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대국민 사과와 거부권 행사 자제 요구 등도 거론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어제도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여권에 특검법 수용을 촉구했다. 이번 영수회담은 항장(降將)을 무릎 꿇리고 전리품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 보자고 했는데, 대통령의 사과를 회담 성사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 더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다. 총선 결과를 지나치게 내세우면서 민주당의 요구가 곧 민심인 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김건희 특별법’등 정쟁을 유발하는 안건도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야당 요구가 과도하긴 하지만, 윤 대통령도 본인 말대로 역지사지의 자세로 협치의 문을 열어 놔야 한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민생회복 지원금은 지급 대상이나 액수를 조정하자는 타협안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범야권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법’도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입장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막상 만나면 어긋나기 쉬운 게 영수회담이다. 첫 만남부터 너무 많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게 문희상,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 원로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선별해야 한다. 공통 관심사인 민생 경제 대책과 의료 개혁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현재 이 두 가지가 국가적으로 가장 큰 현안 아닌가. 두 지도자가 합의를 이끌어내면 두 문제 해결의 중대 분기점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