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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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기업 이사회, 주주 신뢰 얻으려면…

여러 인종과 성별로 이사회 꾸린
美 알파벳, 남다른 실적으로 증명
소수주주 입성 가로막은 韓 기업
다양한 의견 듣고 투명한 경영을

그간 국내 대기업에서는 배당,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둘러싸고 오너를 비롯한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 충돌이 적잖았다. 기업 이사회는 이 같은 경영 판단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냉철하고 투명하게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전체 주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2017년 한국거래소 자율 공시로 도입된 지배구조보고서는 상장기업이 이 같은 지배구조 핵심원칙을 준수했는지 공시하고, 지키지 않았다면 그 사유를 설명하도록 해 자체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올해부터는 자산 규모 500억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무화됐다. 2026년에는 코스피 상장기업 전체로 확대된다.

황계식 경제부장

우리나라 상장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영 투명성을 개선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무엇보다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 측면에서 실망스럽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상장사 중 2023사업연도 보고서를 제출한 214개사를 분석한 결과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소폭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지표 15개 중 평균 8.8개를 지켜 준수율이 59.0%로 집계됐는데, 직전 사업연도보다 7.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등 3가지 항목에서 파생된 이들 15개 지표를 통해 항목별 투명성과 독립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2023사업연도 평균 준수율은 감사기구(4개 지표)가 79.4%, 주주(4개 지표) 59.1%, 이사회(7개 지표) 48.5% 순이다.

이사회 항목의 준수율이 가장 낮은데, 무엇보다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주주 의견을 대변하는 이를 선임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이 9곳에 불과했다. 준수율이 4.2%에 그쳐 이사회 항목을 구성하는 7개 지표 중 가장 저조했다. 지분 50%가 넘는 대주주가 모든 이사를 선임할 수 있어 이렇게 꾸려진 이사회가 독립적인 경영 판단을 내리기 힘든 현실임에도 경영권 방어를 명분 삼아 소수주주의 이사회 입성을 사실상 막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최고경영자(CEO) 승계정책 마련,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지표를 준수한 기업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사회 구성원이 모두 단일성(性)이 아님’ 지표 역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자산 상위 30대 그룹의 사내·사외이사 및 미등기 임원 중 여성은 7.5%로 나타났다. 특히 사내이사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다만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임원 71명 중 69명이 여성이라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사회 구성원의 배경이 다양하면 경영 판단에 여러 이해관계자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만큼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들어 속속 나오고 있다. 앞서 노르웨이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 구성원의 40%를 여성으로 선임하도록 강제하는 할당제를 2006년 가장 먼저 도입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2022년 8월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 후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여성 임원이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이 31.63%에 달할 정도로 실적이 남다른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이사회는 다양성 그 자체다. 백인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전통적인 구성을 탈피했다. 알파벳이 공개한 이사회 역량 현황표인 BSM(Board Skills Matrix)을 살펴보면 이사진 10명 중 백인 남성은 4명이다. 여성은 백인과 흑인 1명씩 모두 2명이다. 나머지 남성 4명은 흑인 1명, 아시아계 2명, 유일한 성 소수자인 히스패닉계 1명으로 꾸려졌다. 구글이 전 세계 검색 엔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만큼 이와 관련해 적확한 경영 판단을 위해 다양한 인종과 성별로 이사회를 꾸렸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해야 하는 우리 대기업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소수주주를 등에 업고 이사회에 진출한 투기세력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도 무턱대고 무시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평소 이사회의 균형 잡힌 판단을 통해 주주의 신뢰를 사는 것이 이른바 ‘먹튀’ 세력에 빌미를 주지 않는 지름길임은 분명하다.


황계식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