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데나워 재단의 초청으로 지난 일주일간 브뤼셀에 소재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와 유럽연합(EU) 그리고 독일 함부르크와 베를린에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와 독일국제관계연구소 등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독일 기민당 계열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인도태평양 지역 4개 국가들(IP-4)과 유럽 국가들 간 협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필자를 포함해 호주 상원의원 및 뉴질랜드 국책연구기관장 등을 초청한 것이다.
방문 기간 중 아데나워 재단은 연일 나토를 포함한 유럽 내 안보 관련 기관들의 정책담당자 및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주선해 주었다. 그 덕택에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전망과 정책, 특히 북한과 러시아 간 포괄적 동반자 조약 체결 이후 이루어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평가에 관해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나토를 비롯한 유럽 소재 국제안보 정책담당자와 전문가들 대부분은 예외 없이 1000일 이상 진행되고 있는 러·우 전쟁에 대해 러시아의 승리, 혹은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종전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표명했다. 면담을 가졌던 인사들은 러시아가 역사상 유럽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경험이 없는 어려운 상대임에는 분명하고, 현재의 전황이 탄약이나 병력 부족 등의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쟁이 진행된다면 향후에 발트 3국이나 핀란드와 폴란드 등이 러시아의 차후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상당하였다. 특히 에스토니아 수상 재직 시 대러 강경정책을 주도해온 카야 칼라스 여사가 최근 EU의 외교수장으로 취임한 사실을 들어, 미국 트럼프 제2기 정부가 출범한다 하더라도 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이 결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공통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유럽 전문가들은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되고 미사일과 탄약 지원을 하게 된 현상을 전쟁의 새로운 국면으로 파악하고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파견된 북한군이 특수부대 성격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자, 유럽 측 인사들은 병력 지원뿐 아니라 북한이 미사일과 탄약을 러시아에 지원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한국이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응하여 구축한 미사일 방어체제 관련 기술의 제공 등을 포함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밝혔다.
2년 이상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러·우 전쟁을 겪으면서 나토 회원국들은 탈냉전기 시대 이래 약화되었던 자신들의 연합방어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데이비드 매캘리스터 유럽의회 외교위원장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각기 레오파드, 챌린저 등 다른 유형의 전차들을 운용하고 있음을 사례로 들면서, 유럽 국가들 간 장비의 통합, 나아가 군부대의 통합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토의 국방기술 혁신을 담당하는 니코스 루타스 국장은 러·우 전쟁 과정에서 참호전술이나 포병화력전 등의 전통적 전쟁 양상도 지속되고 있지만, 드론이나 스타링크 등 새로운 무기체계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나토도 신무기의 효용을 반영한 전술이나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하였다. 함부르크에서 만난 독일연방군 지역지휘관이나 글로벌 지역연구소 연구자들은 탈냉전 시기 러시아와의 경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구축해온 독일의 경제체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독일 내에서도 기존의 평화주의 정책론을 대체하여 억제태세를 강화하고 방위산업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 정파를 막론하고 주류 여론이 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나토 각국 관계자들은 유럽의 안보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강조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확대는 물론, 사이버 안보, 해양안보, 우주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안보협력의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했던 한국에서 어떤 연유로 갑자기 계엄령이 공표되었는가를 궁금해하였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계엄령이 해제된 것을 반기기도 하였다. 한국의 안보 역할에 대한 국제적 기대가 높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에 부응하는 정치·경제적 안정과 대외적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