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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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 “계엄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정치 개혁 나서야” [세계초대석]

전해철 경기도 도정자문위원장

尹 탄핵 후폭풍으로 민생 불안 가중
여야, 국민 앞에 반성… 정쟁 멈춰야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정운영 시스템 한순간에 무너져

한 표라도 더 얻는 쪽에서 권력 독점
현행 소선거구제, 양당 정치 고착화

분권형 개헌 통해 단임제 한계 극복
4년 중임 허용… 책임정치 실현해야

이달 14일 ‘탄핵의 밤’. 전해철 경기도 도정자문위원회 위원장(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200만 시민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 있었다. 각양각색 야광봉을 들고 K팝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인파 사이에 묻혀 과거 탄핵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전 위원장은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직후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감사합니다”를 외칠 때 “죄송합니다”를 답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탄핵안 가결은 국민의 승리”라면서도 “대통령 탄핵은 국가와 국민에게 불행한 일로 신중해야 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번 윤 대통령 탄핵은 사안의 엄중함에 있어 당연한 결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이틀 지난 16일 만난 전해철 경기도 도정자문위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한계 때문에 지난 20년간 세 차례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겪는 비극을 겪었다”며 “정치권은 당장 4년 중임제 등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문 기자

16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전 위원장을 만나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물었다. 노무현정부 민정수석비서관과 더불어민주당 3선 국회의원, 문재인정부 행안부 장관을 역임한 전 위원장은 한때 ‘3철’(전해철·양정철·이호철)로 불리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는 변호인단으로 탄핵 기각을 이끌었고, 2016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2004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정치에 발을 디딘 뒤 20년간 세 차례 탄핵을 겪은 그는 이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치고 선거제를 개혁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더라도 불과 60일 남짓한 기간에 헌법 개정을 이뤄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과거 국회가 개헌 관련 상당한 논의를 진행한 만큼 정치권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났을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국정운영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수의 공직자, 군인, 정치인이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대통령이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참모나 내각의 총리, 국무위원들이 이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자질이 부족해 국민이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체제의 문제다.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지위가 문제다.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참모들이 내각이나 다른 선출직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도 그렇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안 가결을 노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 때와 비교하자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필요했고 다행스러운 일로 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과는 사안 자체가 다르다. 헌재는 2004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에서 ‘직무 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 위반을 이유로 파면해야 한다면 법익 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고 탄핵 결정 기준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입건돼 피의자 신분이 됐고, 검찰 중간 수사 결과에서 범죄 공모 혐의가 파악돼 탄핵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사퇴와 탄핵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전제된 상황이었다. 이번 윤 대통령 탄핵안 역시 사안의 엄중함과 대통령의 의도가 너무 위헌적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으로 참가한 입장에서 헌재의 탄핵 인용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내란죄로 압축했다. 워낙 위헌 사실이나 범죄 혐의가 명확해 탄핵될 가능성은 크지만 헌재가 참고할 만한 수사자료를 충분히 쌓아야 한다. 검찰이 주도하기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주도하고 국방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찰이 공조해야 한다. 40여명의 검사가 참여하는 특검도 준비를 잘해야 한다.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검경이나 공수처의 밀실수사와 달리 여론에 곧바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 동안이나 탄핵심판 이후 정부나 국회에 대해 조언한다면.

 

“이제부터 정치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비상계엄과 탄핵안 가결 후폭풍으로 국민 부담과 경제·금융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다수당인 민주당 주도로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중심은 민생 정책이 돼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여·야·정 국정협의체 제안을 일거에 거절한 여당의 태도는 옳지 않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다면 불과 두 달 내 대선이 치러져 양극단으로 치달은 정치권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상처받고 자긍심에 손상을 입은 국민 앞에서 반성하고, 정쟁을 멈춰야 한다.”

 

―선거·정치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양극화된 정치 대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 개편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분권형 개헌이다. 이는 그만큼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이고, 정권을 잡았으니 뭐든 해도 된다는 접근은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5년간의 집권 기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중심의 국정운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권한을 남용하여 군림하고 통치하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의지나 정치적 고려 때문에 국정운영이 좌지우지될 수 없도록 개헌 등을 통한 정치개혁의 제도적 완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개헌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1987년 개헌은 삼권분립의 헌정체제를 정립했으나 대통령과 국회 권한의 불균형과 5년 단임제의 한계 등 여러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이 같은 정치체제의 폐해를 절감한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9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총리직 등 대연정을 제안했다. 대연정을 무산시킨 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박 전 대통령의 거부도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세력의 반발도 컸다.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작금의 계엄·탄핵 사태를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최소화하려면 국무총리 권한 강화, 인사권 축소, 감사위원 국회 선출 및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총리 복수추천권, 장관 임명동의권 등 분권·견제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 표라도 더 얻는 쪽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행 소선거구제 위주의 선거제 역시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와 소수 정치세력의 배제, 지역 구도가 강한 곳의 특정 정당 후보 당선 등 갈등을 고착화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대안으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제 등이 거론된다. 위원장이 가장 선호하는 개헌 방향은.


“과도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면서도 대통령 단임제의 단점을 극복하려면 분권형 대통령을 지향하되 중임을 허용해 책임정치와 안정적인 집권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을 기본으로, 의회의 국정통제권 강화와 실질화, 권력분립을 위한 구체적인 분권화, 소통과 협치 강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5년 단임제의 경우, 임기 초에는 짧은 기간 업적을 남기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임기종료가 임박해선 정책 추진 동력을 쉽게 잃게 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장기적 국가전략과제와 미래과제의 일관적 수행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보다 우선해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재설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머리로야 개헌이 절박하다. 하지만 현역 의원들이나 유력 잠룡들이 기득권을 약화하는 개헌 논의에 적극 나서겠는가.

“일단 우원식 국회의장 등 역대 국회의장들이 꼭 개헌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만큼 개헌 논의가 오랫동안 상당 부분 진행됐다. 체감상 여야가 동의하는 부분이 70%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개헌까지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도정자문위원장 위촉식 이후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대한 정치적 후원 등과 관련해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지사는 행정 경험, 국정운영 경험 등에서 오랜 시간 능력을 보여왔고 도정 역시 잘 이끌어 온 민주당의 좋은 자산이다. 김 지사가 정치적으로 잘되기를 기대하고 그런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나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 것이다.”

―중진 정치인으로서 향후 2, 3년 목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는 한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승리가 있었다. 그동안 늘 정치개혁을 하고 싶었고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노 전 대통령의 바람처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협치가 가능한 정치를 실현하고 싶다.”

 

전해철경기도 도정자문위원장은…

 

●1962년 전남 목포 ●고려대 법대 ●사법연수원 19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19·20·21대 국회의원(경기 안산시 상록구갑) ●21대 국회 정보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행정안전부 장관 ●경기도 도정자문위원장


대담=송민섭 사회2부장, 정리=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