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연(사진) 대전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4기)는 2005년 법정에서 만난 한 마약 사범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한다. 당시 30대 후반이던 피고인은 이미 필로폰 투약으로 세 차례 징역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출소 후 20일 만에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댄 그는 가족사진을 보다 “마약을 반드시 끊어야만 한다”는 결심에 수사기관에 자진 신고를 했다. 피고인의 반성문에는 “저의 죗값을 회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판사님의 도움으로 제가 새출발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치료감호의 길을 찾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조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현행법상으로는 검사의 치료감호 청구가 없는 한 형사소송 절차에서 법원이 피고인에게 형벌 대신 치료를 명하거나 형벌에 부가해 치료를 강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법정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조 부장판사가 2018년 목격한 미국 약물법정의 풍경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판사가 피고인이 마약중독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마약을 다시 한 적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며 피고인을 칭찬하거나 꾸짖었다. 판사는 재판 도중 법정 내 스피커폰으로 미성년자 피고인의 부모에게 전화해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조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은 북미 약물법원 제도를 참고한 ‘한국형 치료법원 모델’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캐나다의 약물법원은 마약과 같은 규제 약물을 사용하거나, 약물 의존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회복과 재활을 위한 치료적 절차를 제공하는 전문 재판부다. 약물법원은 치료 대상자로 선별된 피고인의 동의를 받아 정식 형사 재판 대신 통상 1∼3년의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대략 4주 간격으로 피고인을 법정으로 불러 소변검사 등을 통해 단약을 하고 있는지,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 등을 감독한다. 이 과정에는 판사와 검사뿐 아니라 보호관찰관, 사례 관리자, 임상 치료사, 복지 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조 부장판사가 고안한 한국형 치료법원 모델은 북미 약물법원의 기본적인 구조를 현재 가정폭력?아동학대 사건에 적용하는 보호처분 절차와 접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마약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중독, 정신질환 범죄 재판에도 접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치료법원 도입을 위해선 사법부에 ‘치유적 감수성’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형을 선고하는 것을 넘어 범죄가 반복되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문제 해결자’로서의 인식이 법관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20년 전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던 피고인은 그 후에도 전과가 수두룩했다. 2009년 마약 중독 말기가 돼서야 치료감호를 받았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며 “중독 말기에 최후의 강력한 치료적 처분으로 이뤄지는 치료감호가 아니라 약물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지 않은 초기 단계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치료사법의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료지향적 재판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조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빈 교실에서 부탄가스를 폭발시키고 이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중학생에게 보석을 허가하면서 법원이 지정하는 병원을 ‘거주지’로 지정해 입원하도록 하는 주거제한 조치를 내렸다. 우울증을 앓던 피고인의 정신과적 치료를 위한 일종의 ‘치료조건부 보석’이다. 그는 “이후 치료 성과가 좋다는 주치의 소견을 양형에 반영해 소년부에 송치했고 그 이유를 판결문에 상세히 적었다”며 “치료 연계형 재판 방식을 제도화하는 것은 정책과 입법의 영역이지만 먼저 실무 차원에서 치료지향적인 재판을 시도하고, 그 효과성을 추적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