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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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치밀한 계엄 각본에도 “내란죄 동의 안 한다”는 尹 대통령

12·3 비상계엄 선포가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른 치밀한 계획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현직 정보사령관 등 정보사 간부들이 계엄 이틀 전인 1일 경기 안산시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계엄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데 이어, 3일 밤 정보사 특수임무 요원들이 대기했던 경기 성남시 판교 정보사 여단 사무실에 육군 제2기갑여단 여단장까지 함께 있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여차하면 서울 근거리에 있는 부대 장갑차 등 기갑전력을 투입하려는 계획을 세워 놓았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다.

구속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무려 1년 전부터 비상조치 관련 언급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실로 확인되면 대통령의 계엄 명분과 크게 어긋나 파장이 예상된다. 앞서 구속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도 했다. 계엄 당시 1500여명의 계엄군이 화기와 1만발 이상의 실탄을 소지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 담화에서 언급했던 “내란이 아닌 국회 경고용 통치행위”라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심판 관련 서류도 며칠째 수령하지 않고 있다. 헌재 재판관 3명의 추가 임명을 막아 탄핵심판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국민의힘과 다를 바 없다. 국정혼란을 부추기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헌재가 예외적인 ‘송달 간주’ 방식으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려 하겠나 싶다. 통지서 수령 거부, 변호사 선임 지연 등 방식으로 수사에도 비협조적이다. 지난 7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약속은 내팽개쳐졌다.

한술 더 떠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 구성을 돕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는 어제 “윤 대통령은 (계엄 당시 의원들을) 체포하라거나 끌어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내란죄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도, 동의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17일 기자들을 만나 실패한 계엄을 두고 “(내란이 아닌) 소란 정도”라고 언급했던 그다. 헌정 질서를 흔든 공직자의 책임 의식은 뒷전이 됐다. 기가 찰 노릇이다.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셈인가. 윤 대통령은 국민적 공분이 더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이번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