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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무기도 버리는 미군… 한국군은 왜 바꾸지 못하나 [박수찬의 軍]

기사입력 2025-05-09 09:37:41
기사수정 2025-05-09 10: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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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이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존의 개념을 뿌리째 뒤흔드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국면에서 미래 전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재정적 낭비를 줄이려는 의도다.

 

랜디 조지 미 육군참모총장은 1일(현지시간) 공개한 지휘서신에서 “구식이고, 요구에 늦게 대응하며, 가격이 과도하고, 유지보수가 어려운 프로그램들을 계속 취소할 것”이라며 “어제의 무기는 내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 육군 M10 경전차가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미 육군은 구조조정을 통해서 확보한 재정적 여유를 무인기와 안티드론(Anti-drone), 장거리 미사일, 신형 M1E3 전차 등에 집중할 방침이다. 육군 변환 구상(ATI)으로 알려진 트럼프 행정부의 육군 혁신 작업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전력·조직 개편, 민첩한 군대 만든다

 

트럼프 행정부의 육군 개혁은 기존보다 더욱 민첩하면서 치명적인 위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기존 소요를 전면 재검토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다. 지휘관들이 전략 목표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신 기술을 통해 지원하게 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기존 자원은 장거리 정밀 타격, 방공 및 미사일 방어, 사이버, 전자전, 대우주 능력 향상에 우선적으로 할당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요성이 강조된 분야들이다.

 

이를 위해 미 육군은 장거리 미사일과 현대화된 무인항공체계(UAS)를 도입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1인칭 시점(FPV) 드론 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다. 최근엔 전체 사상자의 80%가 드론에 의해 발생하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포병보다 더 위력적이고 저렴한 소형 자폭드론은 전쟁 양상을 바꾸고 있다.

 

미 육군 병사가 소형 무인정찰기를 하늘로 띄우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장거리 미사일은 ‘드론 전쟁’ 주도권 장악 도구이자, 중국과의 충돌에 대비한 비대칭무기다.

 

양측이 소형 자폭드론 공격을 주고받는 전장은 우크라이나처럼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를 타개하려면 전선 후방의 보급소·지휘소·드론 통제소 등을 정밀타격해 드론 공격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 야포나 에이태큼스(ATACMS) 전술미사일로는 사거리 한계가 있다.

 

미 육군 소속 10개 상비 사단들은 드론 위주로 대대적인 전환이 이뤄지며 감시 및 보급, 공격 임무에 드론을 활용할 전망이다.

 

에이태큼스를 대체할 장거리 정밀타격미사일 프리즘(PrSM)은 2단계 실전배치가 2028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겨진다. 1단계가 하이마스(HIMARS·고속포병로켓시스템)와의 호환성과 사거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는 탐색기 성능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적 군함과 이동식 방공체계도 식별·추적·타격한다. 네메시스(NMESIS) 미사일과 함께 서태평양 일대 중국 해군 활동을 저지하는 미 육군의 ‘칼’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네메시스는 노르웨이 콩스버그 NSM 대함 미사일의 지상발사형이다.

 

중량과 승무원 규모는 기존보다 줄어들지만,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저지하는 능동파괴장치(APS)와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신형 M1E3 전차를 배치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M1 전차는 자폭 드론 공격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성능개량을 진행하면 문제를 개선할수 있지만, 중량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전차 중량 증가는 기동에 심각한 제약을 가한다.

 

M1E3는 새롭게 개발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2022년 등장한 에이브럼스X 기술실증전차에 적용된 하이브리드 전기 추진 시스템, 무인포탑, 능동파괴장치(APS), 드론과의 통신 기능 등을 탑재하면서 중량은 10t 가벼워지는 기술이 쓰일 전망이다.

 

미래 장거리 강습 항공기(FLRAA)를 개발하고, 무인기 대응 능력을 강화한다. 지휘통제체계에는 AI를 적용해 지휘관의 의사결정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만든 프리즘(PrSM) 미사일이 발사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록히드마틴 제공

군 구조 개편도 이뤄진다. 육군 미래사령부와 교리훈련사령부는 단일 사령부로 통합되어 전력 소요·설계·개발을 조율한다. 북부사령부와 남부사령부는 서반구사령부로 재편된다.

 

장군 직책을 줄여 지휘구조를 합리화하고 민간인 인재 관리 정책도 개정할 예정이다. 육군 항공 부대를 재구조화하고, 항공기 유지보수 요구사항을 통합한다. 모든 보병 여단 전투단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향상된 기동 여단전투단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미래전에 맞지 않거나 비용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무기 프로그램도 다수가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유지비가 비싸다”는 지적을 받은 AH-64D 공격헬기, 과도하게 공급된 군용 차량 험비와 합동경량전술차량(JLTV), 그레이 이글 무인공격기의 조달을 중단한다.

 

개발을 마치고 80대가 미군에 인도된 M10 경전차도 생산을 중지한다. M10은 크고 무거운 M1 전차를 사용하기 어려운 정글이나 시가지에 신속히 배치해 보병을 지원하는 용도로 개발됐다.

 

하지만 중량이 38~42t까지 증가하면서 M1 전차처럼 C-17 수송기에 1대만 실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C-17에 2대를 탑재해서 신속하게 수송한다는 개발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브레이킹디펜스는 로봇전투차량(RCV)과 차세대 자주포 도입 사업, 스트라이커 장갑차 생산도 중단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세대 자주포 사업은 한국산 K-9도 참여할 수 있을 거란 관측이 제기됐던 사업이다. 실제로 사업이 중지되면 북미 시장에 K-9이 진출하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수의 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신기술을 접목하는 미 육군의 혁신 작업은 이번 조치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혁신이 고강도로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 육군 AH-64D 공격헬기 편대가 지상과 가까운 고도로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군도 변혁 필수

 

미 육군의 혁신 기조는 ‘오랫동안 구매했던 것과 같은 장비나 기술을 구매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 개발한 M10 경전차 생산을 중단하는 등 막대한 규모의 매몰 비용도 감수하고 있다.

 

국방획득체계 개편도 서두르는 모양새다. 당초 M1E3 전차는 2030년쯤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 육군 ATI에 의해 2028년으로 완성 시점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개발 시작부터 납품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기존 획득체계로는 급격한 기술 및 전장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다.

 

모든 리스크를 제거하는 대신 통제 가능한 수준의 리스크는 받아들이면서 관료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민간 기술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동원해 획득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군도 이와 같은 변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군이 쓰는 K2 전차, FA-50 경공격기보다 폴란드에 수출될 K2PL·FA-50PL 성능이 더 우수하다. 그럼에도 한국군 K2 전차와 FA-50 성능개량은 지지부진하다.

 

미 육군 M10 경전차가 지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호주에 판매된 레드백 보병전투차는 한국군 K21 장갑차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수출용 기갑차량이지만, 현재와 미래 지상전에 대비하는 능력은 레드백이 우수하다.

 

국토와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전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국방획득체계와 방위산업의 으뜸가는 책무다.

 

그런데도 수출용이 내수용보다 앞선다는 것은 기술과 전장의 변화 속도를 기존 국방획득체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 수출용으로 개발한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세계일보 자료사진

업체간 경쟁 등으로 사업이 계속 지연되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도 미래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군요구성능(ROC)과 기술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존 계획과 법률을 따르는 것에만 집중하는 관료적 경직성 대신 전장 및 기술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드론과 전자전 중심의 미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신속한 대응과 지속적 개선이 필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자전 소프트웨어와 드론 업데이트를 빠르고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경직된 장기 계획에서 벗어나 민첩하게 대응하는 접근 방식을 선택하면서 무기 기술과 전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모양새다.

 

HD현대중공업이 구상하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 모형.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도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군에 빠르게 접목해서 무기체계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국방획득체계에서 비효율적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무기도입사업 절차 전반에 걸친 포괄적 추적 체계를 구축하고, 사업 추진과정에서의 병목현상을 제거하고 가속화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