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1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은행이 금요일에 일찍 문을 닫는 주 4.5일제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은행 근로자들이 주 4.5일제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큰돈을 받으면서 일을 덜 하려고 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랬다면 오히려 금요일에 은행을 정상 영업하면서 교대근무를 하자고 주장했을 것”이라며 “은행이 문을 닫아서 재무, 회계 등 다른 산업도 일찍 일을 마치는 분위기가 돼야 주 4.5일제가 사회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 4.5일제는 지난 21대 대통령선거 때 거대 양당이 공약으로 추진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16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주 4.5일제를 논의할 전망이다.
올해 금융노조는 1일 8시간·주 36시간 근무하는 주 4.5일제를 목표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근무 일수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여가 증대에 따른 소비 진작, 양육시간 부담 완화를 통한 저출생 문제 해소 등을 위해서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저출생 문제, 지방 소멸 문제, 내수 경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주 4.5일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라면서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사회로 가야 사람들이 아이들과 주말을 더 길게 보내고, 지방에 여행도 가고, 출퇴근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면서 집을 고르는 지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20년대 미국에서 포드자동차가 가장 먼저 주5일제를 시도한 것을 언급하면서 “결국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것 아니겠냐. 여가가 있어야 자동차를 사서 탈 수 있다”면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대체 휴일 하루당 소비자 지출 유발 효과가 2조400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주 4.5일제가 국내 내수시장을 진작할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4.5일제를 논의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임금 삭감 여부다. 2023년 의료계 최초로 주 4일제를 실시한 연세의료원 등은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추가 채용 필요성 등을 고려해 간호사 임금을 약 10% 삭감했다고 밝힌 적 있다.
김 위원장은 “가능하면 임금 삭감 없이 주 4.5일제로 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원하는 여러 경제적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주 4.5일제로 생산성이 영향을 받는다면 임금 동결·삭감 등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조는 금융산업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꼭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주 5시간씩 영업시간을 단축한 2019∼2022년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13조9000억원에서 18조5000억원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력이 생산성과 바로 일치되지 않는 자본시장의 특성이기도 하다”면서 “또 그렇기 때문에 은행권에서 제일 먼저 (주 4.5일제를)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주 4.5일제 도입으로 신규 고용 창출 효과를 내세우는 데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임금피크제도 신규 채용을 유발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건비만 줄였을 뿐”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눔 효과를 노린다는 건 현실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주 4.5일제가 은행권에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제 20대 대선을 앞두고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후보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각각 주 4일제·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기업·신한은행 등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주 4.5일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엔 선거 결과를 따라 주 4.5일제 논의도 엎어졌다”면서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충분히 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주 4.5일제가 너무 금융 노사 관계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주 4.5일제가 됐을 때 생겨날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