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채가 1% 늘어나면 소비자물가는 최대 0.15%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재정 적자 상황일 때 확장적 정책을 쓰면 물가 상승효과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재정학회에 따르면, 성균관대 이준상 교수와 장성우 연구원, 한국은행 이형석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재정건전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재정학연구 5월호에 게재했다.

연구 결과, 기초재정수지가 나빠지고 정부 부채·지출이 늘어나면 소비자물가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부채가 1% 증가할 경우 소비자물가지수가 최대 0.15% 오르는 것이다.
재정 상황에 따라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다르게 나타났다. 재정이 흑자인 상황에서는 부채가 늘어나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지만, 적자 상황에서는 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재정정책이 물가에 영향을 주는 핵심 경로가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과도한 지출이나 부채 증가를 목격한 가계들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게 되고, 이러한 기대 심리가 실제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분석 기간은 2000년 10월부터 2023년 11월까지로, 정부부채(국고채, 양곡채, 국민주택채, 외평채 포함), 정부지출, 기초재정수지 등의 월별 데이터를 활용했다. 연구 방법론으로는 변수 간 상호작용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베이지안 VAR’ 모형을 적용했다.
연구팀은 “재정 당국은 재정정책과 재정 건전성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음을 고려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 개선이 물가 안정에서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특히 “재정 건전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경기 부진에 따른 위기감에 과감한 재정 투입을 결정한 이재명 정부가 물가 상승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정부가 지난 19일 공개한 새 정부 추경안을 보면, 올해 정부지출 규모가 기존 673조3000억원에서 702조원으로 확대되면서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59조6000억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19조8000억원의 국채 추가 발행이 불가피해져 국가채무 총액이 1273조3000억원에서 1300조6000억원으로 증가한다.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돌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49.0%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은 이번 추경만으로는 당장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작년 같은 달보다 1.9%로 목표치인 2.0%를 밑도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경을 통한 13조20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소비쿠폰 지급과 29조원 규모의 지역 화폐 발행이 예정된 가운데, 한국은행의 연내 1~2회 추가 기준금리 인하까지 겹치면 유동성 증가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물가 문제를 핵심 민생 현안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물가 문제가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대책 수립을 지시한 바 있으며, 정부는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물가 안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