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국 항공산업과 관련한 다수 행정명령에 서명을 했다. 미국 영공을 무인기(드론)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단을 마련하고, 자국 드론산업을 육성하는 등 드론 관련 지시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한 가지 행정명령이 더 주목을 받았다. 민간이 미 영공에서 초음속 비행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폐지하라는 것. 미국은 1973년 이래 자국 상공에서 초음속 민간 항공기의 비행을 제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52년 만의 규제 철폐 선언으로 미 연방항공청(FAA)은 향후 18개월 이내에 초음속기 전용 소음 기준과 규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 초음속 민간 항공기 시대를 위한 법적 규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초음속 항공여객시대 가시화
초음속 항공기는 기존 항공기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비행할 수 있는 꿈의 기술로, 이미 1969년 영국과 프랑스의 국영기업들이 합작으로 ‘콩코드’를 제작해 1976년부터 상업적으로 운항한 바 있다. 다만, 콩코드는 많은 문제가 있어 결국 초음속 항공여객시대를 위한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초음속 비행 시 제트엔진이 뿜어내는 ‘소닉붐’을 제어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소닉붐이란 항공기의 초음속 이동 시 충격파로 굉음이 발생하는 현상인데, 내부 탐승객은 이를 들을 수 없고 대신 지상에 있는 사람들만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게 된다. 콩코드의 경우 1만5000m 고도를 비행할 때 지상 100㎞ 범위의 지역에 소닉붐을 뿜어냈고, 결국 소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바다 위 비행만 허용이 됐다. 초음속 비행에 따른 막대한 연료 소모도 문제였다. 결국 광범위한 비행 금지구역과 연료 비용 등으로 인한 채산성 문제로 콩코드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초음속 비행은 다시 군용 전투기의 전유물로 남게 됐다. 미국도 소닉붐 문제로 1973년 규제를 만든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음속 민간 비행을 위한 도전은 이어졌다. 최근 들어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 미국의 ‘붐슈퍼소닉’이다. 이 기업이 자체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시제품인 XB-1은 지난 1월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 상공에서 가진 시험비행에서 이륙 12분 만에 약 1만m 상공에서 마하1.122(음속의 1.122배) 속도를 기록했다. 민간 기업이 개발한 여객기가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첫 사례다.
XB-1은 고급 탄소섬유, 공기역학 기술, 디지털 센서 기반 전방 시야 시스템 등을 활용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렸는데, 특히 고도 9000m 이상에서 비행할 경우 소닉붐이 지상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냈다. 이로써 민간이 거주하는 육상 지역에서 민간 항공기가 초음속 비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 시험비행 성과를 기반으로 붐슈퍼소닉은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오버추어’라는 이름의 초음속기를 개발 중이다. 80명이 탑승가능한 이 항공여객기는 최고 속도 마하 1.7(시속 2080㎞), 비행거리 약 7900㎞로 설계되며 도쿄~시애틀 구간을 기존 8시간에서 4시간반으로 단축시킬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전투기 제작으로 극초음속기에 익숙한 록히드마틴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손을 잡았다. 개발 중인 X-59는 지난해 5월 소닉붐 측정용 연구 비행기를 투입해 검증에 들어가 2025년 초도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일본의 거센 추격
트럼프 대통령이 발 빠르게 관련 규제를 철폐하고 나선 건 초음속 항공여객기 기술 개발이 상용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인 때문이지만 기술 경쟁에서 중국, 일본 등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이 이어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특히 라이벌 중국의 추격이 부담스럽다. 중국 국영 항공기제작사인 상용항공기공사(COMAC)는 지난 3월 중국 학술지 ‘항공학보’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초음속 항공기 ‘C949’의 개발 상황을 공개했다. 해당 논문에서 COMAC는 C949가 1만1000㎞를 비행할 수 있으며, 비행소음도 헤어드라이어와 비슷한 수준인 83.9 PLdB로 낮출 수 있도록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상하이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약 5시간 안에 직항이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내다봤다.
중국 기업 스페이스 트랜스포테이션은 지난해 말 초음속 항공기 엔진시험에서 마하4(시속 5000㎞)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스페이스 트랜스포테이션 측은 이번 엔진시험 성공이 런던에서 뉴욕까지 2시간 이내에 승객을 태울 초음속 민간 여객기 개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2027년까지 초음속 여객기 시험비행, 2030년 상업운항 등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미쓰비시중공업이 함께 소닉붐 감소 기술을 개발 중이다. 2028년경에는 길이 약 10m의 무인기로 충격파 평가시험을 진행할 예정으로 성공할 경우 일본도 초음속 항공여객기 개발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산업 돌파구 기대
초음속 항공여객기 기술 개발 진전에 전 세계 항공사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붐슈퍼소닉은 XB-1의 시험비행 이후 미국의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을 비롯한 전 세계 항공사들이 이미 130대 이상의 오버추어 기체를 사전주문 예약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술이 상용화가 될 경우 다수 항공사들이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초음속 여객기가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는 전 세계 항공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유력한 기술로 꼽힌다는 점에서 이런 움직임은 놀랄 일도 아니다. 전 세계 항공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궤멸적 피해를 입은 뒤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다시 성장세에 접어들긴 했다. 그러나 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운영비용 상승과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화물 및 승객 수요 불안정, 중동·유럽 등의 지정학적 불안 등으로 인해 순이익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고 성장동력은 더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비행시간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는 초음속 항공여객기는 항공운송 이용자를 장기적으로 늘려 항공산업의 성장을 새로 이끌 동력으로 기대를 받는다. 중국 COMAC는 초음속 항공여객기가 상용화될 경우 잠재적 이용자 숫자가 연간 세계 항공기 여객 수의 1%에 해당하는 450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닉붐 저감을 통해 육상 지역 운항이 가능해지고, 항공 여객기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지면 초음속 여행을 위한 항공권 가격도 저렴해질 수 있다. 과거 콩코드의 경우 비싼 운용 비용 때문에 티켓값도 영국~미국 이동이 1만2000달러(약 16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 반면 붐슈퍼소닉이 개발하는 오버추어는 도입 초기 절반 이하인 5000달러(약 680만원) 이하 가격으로도 운송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블레이크 숄 붐슈퍼소닉 최고경영자(CEO)는 CNN 인터뷰에서 “향후 10년 내에 전 세계 어디든 왕복 4시간 이내에 이동하고 100달러만 내면 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초음속 항공여객기 상용화는 광대한 국토로 항공운송의 비중이 큰 미국, 중국 등 국가에는 새로운 경제성장 활력을 더할 요소로도 손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관련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중국이 국영기업 등을 통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마이클 크라티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이후 “목표는 미국인들이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4시간 이내에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항공우주공학, 재료과학, 소음 감소 분야의 발전으로 이제는 육상 초음속 비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면서 상업적으로도 가능한 상태”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