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의 프로 11년 차 김호령(33)과 15년 차 고종욱(36)은 많은 야구팬에게 잊혀져 가던 이름이었다. 젊은 시절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밝은 미래를 기약하는 듯했지만 한계를 드러내며 2군에 내려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2025시즌도 개막 엔트리에서 이들의 이름이 빠졌다. 하지만 두 선수는 나성범, 이우성 등 주전 외야수들의 줄부상과 최원준의 부진 등으로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절대 1강’이란 전망 속에 올 시즌을 시작했으나 한때 9위까지 처졌던 KIA는 이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어느새 2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 대표 출신 유망주였던 김호령은 동국대 졸업 후 201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전체 102순위로 간신히 프로에 입성했다. 그래도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를 앞세워 루키 시즌부터 1군에서 103경기에 출전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형편없는 타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수비 전문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입지가 줄어들었다. 올 시즌도 4월 말에야 1군에 처음 올라온 뒤 1, 2군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5월 중순부터 출전 기회가 많아지더니 45경기에서 타율 0.276 2홈런 21타점 19득점 4도루로 KIA 공격의 활로를 뚫어주고 있다. 김호령은 특히 지난 5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에서 평생 잊기 힘든 손맛을 봤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포함해 한 경기 2홈런을 날린 것. 2회 박세웅을 상대로 솔로포로 시즌 마수걸이 아치를 그린 데 이어 5회 무사 만루에서는 바뀐 투수 정현수를 상대로 중견수 머리 위로 넘어가는 비거리 125m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렸다. 마치 타격에 눈을 뜬 것처럼 7월 들어 5일까지 5경기에서 타율 0.444(18타수 8안타) 6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고종욱도 최근 KIA에서 ‘알토란’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활약을 하고 있다. 2011년 3라운드 전체 19순위로 넥센(현 키움)에 입단한 고종욱은 2015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수비가 불안하다는 평가 속에 2019년 SK(현 SSG)로 트레이드된 뒤 백업으로 전락했고 2022년에는 KIA로 다시 이적해야 했다. 이후 출전기회가 줄어들며 2군 선수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은퇴 갈림길에 서 있었던 고종욱은 올 시즌 지난달 6일 처음 1군에 올라온 뒤 이달 5일까지 19경기에서 타율 0.429(42타수 18안타) 2홈런 9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KIA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결승타가 3개나 될 만큼 승부처에서 좋은 타격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지난달 29일 LG전에서는 2023년 10월4일 KT전 이후 무려 634일 만에 3안타 경기를 펼치고 경기 후 임신 중인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의 인터뷰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호령과 고종욱이 되살아난 비결은 누가 뭐래도 ‘절실함’이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기에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고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활약으로 이어졌다. 김호령은 “신인 시절에 감독·코치님이 말씀해 주신 걸 흘려들었던 것 같다”면서 “경기 때 더 열심히 더 많이 뛰어다니려고 한다”며 각오를 다잡고 있다. 고종욱도 “올해 시범경기도 못 나갔다. 그래서 기회가 많이 없을 거로 생각했고 마지막 준비를 잘해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시즌 초반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부진했던 KIA는 펄펄 날고 있는 김호령과 고종욱과 함께 부상으로 이탈했던 나성범, 김선빈, 김도영, 이의리 등 기존 주전 선수들이 차례로 돌아올 예정이라 더욱 막강해진 전력으로 후반기를 보낼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용병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활용카드가 많아진 이범호 KIA 감독은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두 한화는 전신 빙그레 시절인 1992년 이후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확정했다. 한화는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의 경기에서 홈런 4개 포함 12안타를 터뜨린 타선의 폭발과 6이닝 동안 탈삼진 11개를 솎아낸 선발 와이스의 무실점 역투에 힘입어 10-1로 이겼다.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인 8∼10일 KIA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키움을 만난 한화는 주말 3연전을 싹쓸이하며 49승2무33패로 선두 자리를 공고히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