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노동위원회 조사관이 양계장 닭 같다’는 농담을 해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직원 A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같이 전하며 “양계장 주인이 닭이 아픈지 안 아픈지는 신경 안 쓰고 매일매일 ‘알은 낳았나’만 확인하는 게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해진 시간에 쫓겨 밀려 들어오는 사건을 처리하는 데 정신없는 노동위 조사관의 처지를 ‘양계장 닭’에 비유한 것이다. A씨는 최근 2년여 조사관으로서 심판 사건을 처리하던 중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을 ‘노동경찰’로 본다면, 노사 간 분쟁을 조정하고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 등에 대한 구제 신청을 처리하는 합의제 기관인 노동위는 ‘노동법원’이라 할 수 있다. 조사관은 ‘판사’ 역할을 하는 노동위원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건 진술·증거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법원으로 따지면 ‘법원 사무관’ 역할이다. 조사관 업무를 하려면 보통 ‘근로감독관 근무 경력 2년 이상’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두 직군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재명정부가 현재 3000명 수준인 근로감독관을 최대 1만명까지 늘릴 예정인 가운데 노동자 권리 구제의 ‘첨병’인 노동위 조사관 증원도 속도를 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노동위 접수사건이 최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5년 새 노동위 접수사건은 40% 이상 늘었다. 특히 ‘악명’ 높은 경기지노위의 경우 같은 기간 접수사건 증가율이 무려 80% 육박하는 수준이다. 반면 조사관 증원은 ‘찔끔’이다 보니 사실상 ‘양계장 닭’ 신세란 자조가 내부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노동위 판정 질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란 목소리까지 나오는 만큼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1인당 사건 122건… “쳐내기 바쁘다”
5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노위와 12개 지노위에 접수된 사건 수(심판·조정)는 총 1만3455건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해 한 해 접수 건수로 환산해보면 5년 전인 2020년(1만8924건) 대비 42.2% 늘었단 계산이 나온다. 조사관 인원이 사건 접수량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1인당 사건 수 또한 2021년 67.9건에 이어 2022년 68.4건, 2023년 80.6건, 지난해 85.2건으로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는 중이다. 올 상반기도 47.2건으로 집계돼 사실상 4년 연속 증가세를 그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건 경기지노위다.
지난해 1인당 사건 수가 무려 122.5건이나 된다. 전체 노동위 평균(85.2건)과 비교해도 43.8%나 많은 수준이다. 1인당 사건 수 기준으로 2위인 서울지노위(99.5건)과 견줘도 그 격차가 23.1%나 난다. 더 암담한 건 해가 갈수록 1인당 사건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93.4건을 찍은 이후 2022년 97.1건, 2023년 118.4건, 지난해 122.5건으로 3년 연속 증가세를 그린 터다. 올 상반기 집계(69.4건)를 고려할 때 이 추세가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사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심판사건 기준으로 적정 1인당 사건 수는 한 달에 10건 내라고 한다. 1년으로 환산하면 120건 수준이다. 지난해 심판사건만 따졌을 때 경기지노위 조사관 1인당 사건 수는 148.1건이었다. A씨는 “한 사람당 한 달에 10건 안쪽이면 복잡한 사건도 잘 정리할 수 있고 판정서도 위원회 판단 취지에 맞게 신경을 쓸 수 있다”며 “그 이상, 15건 정도까지 가면 통상 근무시간만으로 소화하기 힘들고 야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는 경기지노위 조사관 중 한 달 기준으로 20건 이상 맡은 조사관도 여럿 있었단 설명이다. A씨는 “20건을 넘어가면 정말 필요한 행정 업무에 심문회의 전날 딱 하루 조사보고서를 정리하는 수준으로만 일을 해야 한다”며 “이건 노동위 판정의 전문성을 해치는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3월 조사관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9명 이상(91.2%)이 사건 수 등 증가가 조사보고서와 판정서 질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조사관 업무만 7년 넘게 해오고 있는 다른 관계자 B씨는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서면이나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가 있는데 직권조사를 통해 보완하는 경우가 있다”며 “노동위 차원에서 판정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직권조사를 활성화하자는 기조를 갖고 있지만 현장에선 정해진 기한 내 사건을 처리하는 데 허덕이다 보니 직권조사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노동위 사건은 접수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심문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조사보고서 작성 시 직권조사를 어느 정도 하고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45.2%(불충분 32.1%·매우 불충분 13.1%)가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아픈 조사관’ 속출… ‘악성민원’ 빈발
1인당 사건 수 폭증이 악영향을 끼치는 건 조사보고서나 판정서의 질만이 아니다.
사실상 조사관의 건강조차 해치고 있다는 게 노동위 안팎의 평가다. 당장 최근 3년간 조사관 질병휴직 현황만 봐도 경기지노위는 9명으로, 지노위 중 경기지노위보다 현원이 많은 서울지노위(5명)의 2배 가까이 됐다. 현재 질병으로 휴직 중인 경기지노위 조사관은 총 4명으로 정원(40명) 대비 10%나 되는 형편이다. 휴직 중인 경기지노위 조사관 한 명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얼굴 반쪽이 마비되는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사건 수 증가에 악성 민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단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표적인 게 부당해고 사건 처리 중 화해 절차를 악용해 사용자로부터 일정 수준의 금전 보상을 받아달라고 노골적으로 조사관을 압박하는 경우다. 한 관계자는 “사측이 화해 의사가 없다면 조사관이 강제로 종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심문회의에 가기 전에 돈부터 받아달라는 악성 민원이 잦다”며 “심한 경우는 사건 접수만 단 한 명이 100건 넘게 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조사관이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주는 인력이 아님에도 마치 고용된 변호사처럼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단 것이다.
당장 조사관 보호 차원에서라도 증원이 급선무지만 여태 미미한 수준에 그친 게 현실이다. 전체 노동위 조사관 정원은 5년 전 244명이었는데 올 상반기 기준 248명으로 4명 늘었을 뿐이다. 경기지노위 정원 또한 같은 기간 증원 규모가 3명(37명→40명)에 그쳤다. 최근 중노위는 내년도 직제 개정 심의에 들어간 행정안전부에 조사관 증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여당이 조만간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라 노조 창구 단일화 사안 등 노동분쟁 또한 앞으로 더 증가할 수밖에 없는 만큼 조사관 증원이 필수라는 게 중노위 측 설명이다. 중노위 관계자는 “경기지노위에 과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12∼13명 증원 의사를 전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