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포함한 국방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전략이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이를 구현할 무기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전력증강 추세였다. 이제는 무기와 기술 발전에 따라 전쟁과 군사작전이 영향을 받는 방향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무기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진 결과다.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 뒤처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국면에서 기존 기술을 창의적으로 재활용하고 새로운 개념을 적용한 무기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요격드론,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날아가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AI) 드론, 전투기에서 발사해 수백㎞ 거리에 있는 지상표적을 파괴하는 공중발사 탄도미사일 등이 대표적이다.

◆드론으로 드론을 잡는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드론의 활용도가 높다. 드론으로 전선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국면에서 전통적 방식의 전격전은 힘을 잃었다. 양측은 최전선에서부터 상대국 수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드론 공격을 주고받으며 소모전과 대치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찰·타격 등의 작전에서 드론이 널리 쓰이면서 방공체계도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고가의 방공무기로 값싼 드론을 요격하는 것은 가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공격에 주로 쓰는 이란산 샤헤드 자폭드론은 대당 가격이 2만달러(2620만원)에 불과하지만, 우크라이나군 방공무기인 독일산 아이리스-티(IRIS-T) 미사일은 50만달러(약 6억원), 패트리엇은 400만달러(55억7000만원)에 달한다. 드론 공격에 맞서 방공망을 가동했다가 전투기 공습 위협에 취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요격 드론이다. 방공체계나 전자전에 의존하지 않고, 소형 드론으로 적 드론을 탐지·추적해 근접 후 충돌하거나 자폭 또는 물리적 타격을 가해 파괴한다. 지상통제 또는 자율 비행을 하며, 군집 운용을 통해 다수의 드론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다. AI 자율 요격기술이 추가되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격드론을 실전에서 적극 활용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2023~2024년 우크라이나군이 1인칭 시점(FPV) 드론으로 러시아 드론을 요격하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수 등장했다. 대부분 수동 조작이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한 소형 드론으로 대당 가격이 최대 수억원에 이르는 러시아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강화되는 국면도 요격드론 사용을 촉진하고 있다. 최근 폴리티코 유럽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개전 이후 최다인 6275대의 드론을 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대당 1000∼5000달러(140만∼700만원)의 저가 요격 드론 개발·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도 자체적인 요격 드론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전선에서 병사들이 FPV 드론을 조종해 적 드론을 파괴하는 방식이 주로 쓰이고 있다.
AI를 활용해 스스로 임무를 수행하는 드론도 등장했다. 체코 기업 LPP 홀딩이 개발한 AI 자율 드론 MTS는 공중에서 센서를 활용해 지형을 분석하고 지도와 비교해 경로를 탐색한다. 이를 통해 적군의 전자전 공격을 회피한다. 시속 200㎞ 속도로 최대 1000㎞ 비행이 가능하며, 일부 모델은 표적을 탐지하고 정밀 타격할 수 있다.

◆공중에서 탄도미사일을 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V-2 로켓으로 영국 런던을 공습한 이후 탄도미사일은 지상에서 발사되어 지표면에 낙하하는 무기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관념을 뒤집는 무기가 등장했다. 공중발사 탄도미사일(ALBM)이 그것이다.
ALBM은 전투기나 폭격기 등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이다. 항공기에서 분리되면 엔진이 점화해 빠른 속도로 포물선 궤도로 날아간다. 공중에서 발사해 초기 탐지와 궤도 예측이 어렵고, 사거리는 쉽게 연장할 수 있다. 발사 지점과 표적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어 생존성도 높다. 때문에 방공망 회피 또는 파괴나 적 내륙 지역에 대한 선제타격용으로 쓰인다.
ALBM을 실전 운용하는 국가로는 이스라엘이 꼽힌다. 국토가 협소하고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형태인 이스라엘은 반격 능력 확보 차원에서 ALBM에 주목했다. 최근 수년간 이란을 여러 차례 공습하면서 자국산 ALBM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10월 미 국방부에서 유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군은 ALBM을 사용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시기 이란 공습을 감행했는데, 수십 발의 ALBM을 먼저 쏴 이란 방공망을 무력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밀 문서 등에서 언급된 ALBM 중에는 이스라엘 라파엘이 개발한 록스(ROCKS)가 포함되어 있다. 록스는 발사 후 목표물까지 스스로 비행하며, 위성항법체계(GPS) 신호 수신이 제약받을 때에도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록스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ALBM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실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군이 감행한 이란 공습작전 ‘일어나는 사자’(Rising Lion)에서도 ALBM이 투입된 정황이 있다. 해당 작전에 참가한 이스라엘 공군 F-16 조종사는 최근 미국 군사전문매체 TWZ와의 익명 인터뷰에서 ALBM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 장거리 표적 타격으로 전략·전술적 유연성이 커진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킨잘 ALBM을 사용했다. 미그-31 전투기에 탑재되는 킨잘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공중발사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사거리가 2000㎞에 달한다. 튀르키예도 2024년 ALBM 시험발사를 실시했고, 중국 등에서도 ALBM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 ALBM 기술은 점진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