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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의 대화’ 시즌2(?)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5-08-30 10:08:22
수정 : 2025-08-30 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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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9일 오후 늦게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 총장은 “저를 비롯한 검찰 수뇌부가 새 정부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며 “검찰 총수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앞선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2년 11월 취임한 그는 총장 임기 2년 중 겨우 4개월만 채우고 물러난 비운의 단명(短命) 총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김 총장이 자진 사퇴의 이유로 든 ‘새 정부로부터 불신’이란 무엇일까. 그날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검찰 상층부를 믿지 못한다”며 대검찰청 지휘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을 뜻한다.

2003년 3월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검사와의 대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노 대통령 왼쪽은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다시 2003년 3월9일 그날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가보자. 노 대통령이 비교적 젊은 평검사 10여명과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훗날 대통령)도 배석했다. TV와 라디오로 생중계가 이뤄지는 가운데 검사들은 노 대통령에게 가시 돋친 질문을 쏟아냈다.

 

대학을 다니지 않은 대통령한테 ‘몇 학번’이냐고 따져 묻는가 하면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으로 규정한 뒤 “검사들을 토론을 통해 제압하시겠다면 이 토론은 무의미하지 않느냐”고 을러댔다. 급기야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검사에게 사건 관련 청탁 전화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더는 참기 어려웠던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고 쏘아붙였다.

 

그날 대화에 배석한 문재인 수석은 나중에 저서에서 “검사들의 태도는 목불인견이었다”며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회상했다. 노무현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 사이에 검사들의 오만과 권위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만 해도 검찰의 수사 지휘 아래 놓여 있던 경찰은 “이래서 경찰 수사권 독립이 필요한 것”이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을 외쳤다. 바야흐로 대대적인 검찰 개혁의 여건이 조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 취임한 송광수 검찰총장과 그 휘하의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이끈 이른바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사건’ 수사가 막을 올리며 검찰 개혁론은 자취를 감췄다. 여야 가리지 않는 중수부 수사팀의 성역 없는 행보에 여론은 검찰을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부정부패 집단’으로 찍힌 정치권은 맥을 못 췄다. ‘송광수·안대희 팬클럽’까지 생겨날 정도로 검찰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내가 직접 (검찰 개혁) 토론회를 주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오른쪽으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이 보인다. 뉴스1

새 정부 출범 후 검찰 개혁 논의가 분분하다. 개혁의 속도 등을 놓고 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 간에 이견이 노출되며 당정 갈등으로 비화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검찰 개혁의) 중요 쟁점에 대한 대책과 해법 마련을 위해 국민 앞에서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토론하라”고 지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은 심지어 당신이 토론회를 주재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검찰 개혁 토론회라니, 22년 전 노무현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과 ‘풍부한 수사 노하우를 지닌 검찰이 무력화하면 범죄자들 천국이 될 뿐’이란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오직 국민의 이익만을 좇아서 정의롭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