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없애고 수사권을 가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기소권을 가진 공소청을 법무부 산하에 설치하는 검찰개혁안을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15일 법조계에선 제대로 된 설계 없는 형사사법 시스템 변경은 자칫 피해자에게 더 불리한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1년 문재인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생긴 수사기관 간 ‘사건 핑퐁’ 문제가 심화해 애꿎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 수사가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보완수사 없이 기계적 기소로 이어질 경우 현재 2∼3%에 불과한 형사사건 무죄율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범죄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이 커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사기관 간 ‘사건 핑퐁’ 심화”
경찰은 2022년 5월10일 혈중 알코올 농도 0.080%의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피의자 A씨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의자는 “음주 측정 당시 경찰이 소속을 밝히지 않았다”며 절차적 문제를 주장했다. 사건을 송치 받은 검사는 6월8일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사건을 돌려 보냈다.

경찰이 보완수사 결과를 통보한 건 9개월이 지난 2023년 3월15일이었다. 그러나 내용이 충분치 않다는 판단에 담당 검사는 재차 보완수사 요구를 했다. 그러자 경찰은 돌연 2024년 2월 ‘송치 결정’을 ‘불송치 결정’으로 변경해 사건을 종결했다. 검사는 2024년 4월 해당 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송치를 요구해 사건을 넘겨 받고 직접 보완수사를 진행한 후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 발생 2년 만이었다. A씨는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수사 종결권이 부여되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폐지됐다. 그러자 경찰은 수사가 미비한 상태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수사지휘권이 없는 검사는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 사건을 돌려보내는 핑퐁 현상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이에 더해 검사의 보완수사권 또는 보완수사 요구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는 “경찰은 사건을 송치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검찰은 자기 사건이 아니라며 수사기관 간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개혁안이 실현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중수청 설립에 대해 “1차 수사기관을 이렇게 대충 만들면 모든 사건을 서로 미루는 ‘핑퐁 게임’이 시작될 것”이라며 “사건 초반에 증거를 빠르게 취해야 하는데 수사기관끼리 싸우는 와중에 증거가 다 인멸될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부패·경제 범죄 등 검찰이 수사 전문성을 가진 중요범죄 사건 지연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에서 6개월을 초과한 사건 비율이 사기범죄는 2020년 11.8%에서 24.8%, 횡령은 8.8%→14.9%, 배임은 20.5%→50.2%로 늘었다.

◆“수사·기소 분리, 무죄율 상승 우려”
검찰의 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이 이뤄지면 기소 이후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양홍석 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은 “경찰의 수사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검사들도 제대로 보완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그러면 (유무죄 판단에 대한) 법원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 전 센터장은 “보완수사 요구로 사건이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 시일이 소요되면 공판 자체가 최초 사건 발생 시점으로부터 한참 뒤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서 “사건 발생 후 6개월 있다가 재판하는 것과 사건 발생 후 2년 뒤에 재판하는 건 증인의 기억이나 진술 등에 질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무죄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사 주체와 재판에 서는 검사 간 소통이 단절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공판부에서 근무한 한 검사는 “사실관계가 복잡한 경제사건은 재판 전 증거기록을 모두 보더라도 사실관계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며 “누굴 추가로 불러 증인신문을 해야 할지, 증거의 어떤 부분이 어떤 증언과 결합했을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직접 증거수집을 하거나 대면조사를 해본 사람밖에 알 수 없다”고 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문재인정부 때 ‘검사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없앤 이후 형사 재판 기간이 과거보다 늘어났는데, 앞으로는 이에 더해 미국처럼 검사들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법정에 세워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려고 하는 모습도 벌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의 보완수사권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기소 여부만 결정하는 검사는 수사 쟁점에 대해 하나도 모를 수밖에 없다”면서 “피고인이 전관 변호사 수십 명을 써서 수사의 허점을 파고들면 그제야 서류와 증거물을 넘겨받은 검사가 사건에 대응할 수 있겠나. 피고인은 결국 무죄나 공소기각으로 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