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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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도로 위 폭탄’ 픽시 자전거

입력 : 2025-09-17 23:43:05
수정 : 2025-09-17 23: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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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Fixie) 자전거는 변속기나 브레이크 없이 하나의 기어만 사용해 축과 톱니가 고정된 기어 자전거(Fixed Gear Bike)의 줄임말이다. 원래 경기장에서 사용되는 선수용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페달을 앞으로 밟으면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밟으면 뒤로 간다. 시속 60㎞까지 달리는데, 제동거리가 일반 자전거보다 4~5배 길어 돌발상황에서 곧바로 멈추기 어렵다. 픽시 자전거를 소유한 학생 5명 중 2명 이상이 브레이크를 임의로 제거한 채 탄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에서 픽시 자전거를 타던 한 중학생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혀 사망했다. 이달 19일에는 대전에서 픽시 자전거를 타던 중학생이 택시와 부딪쳐 부상을 당하는 등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5571건의 자전거 교통사고로 75명이 숨지고 6085명이 다쳤다. 연령별 부상·사망자는 18세 미만이 1461건(26.2%)으로 가장 많은데, 경찰은 픽시 자전거로 인한 사고가 적지 않다고 추정하고 있다. 픽시 자전거가 ‘도로 위 폭탄’ ‘거리의 무법자’로 불리는 이유다.

학생들은 유튜브·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본 멋진 주행 장면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픽시 자전거를 구매하고 있다. 외관이 멋있고 ‘스키딩(뒷바퀴를 미끄러지게 해 멈추는 것)’ 등 현란한 주행기술을 연마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저가형이 30만~40만원이고, 고급형은 100만~20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자전거 모양이 깔끔해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 보니 ‘신(新)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까지 나온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50조 7항은 ‘교통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자전거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픽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구동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가 있는 바퀴 둘 이상의 차’라는 자전거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 사각지대에 방치해 온 셈이다. 경찰이 어제부터 픽시 자전거 운행에 도로교통법상 안전운전 의무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집중 단속에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제라도 학생들의 어이없는 사고, 죽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