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서 2000명분 쌀밥을 짓는 장면은 장관입니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반지르르 윤이 나는 하얀 밥은 군침을 절로 돌게 합니다.” (경기 이천시 관계자)

3년 전 방문한 이천시의 쌀문화축제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잔뜩 움츠렸던 아이들에게 넓은 축제장 이곳저곳에서 뛰놀 기회를 줬습니다. 황금 다랑논에서 모내기, 짚풀 공예, 탈곡 체험 등을 하며 선조들의 옛 농경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혔죠.
인근 무지개 언덕에선 떡만들기, 떡메치기가 이어졌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형 가마솥 앞에 줄을 서 이천쌀로 빚은 비빔밥을 먹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공원 내 코끼리 열차에 오른 아이들은 마치 대형 놀이공원을 방문한 것처럼 즐거워했습니다.
◆ 맛과 멋이 어우러진, 쌀로 잇는 즐거움…장터도 열려
황금 들녘에서 수확한 쌀로 빚는 ‘제24회 이천쌀문화축제’가 22일 개막했습니다. 26일까지 닷새간 이천농업테마공원에서 이어지는 올해 축제의 주제는 ‘맛과 멋이 어우러진, 쌀로 잇는 즐거움’. 이천쌀의 우수성과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데 무게를 뒀습니다. 바다 건너 대만 타이베이 경영대학원에서 농산품 지식재산권 운영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6번이나 국내 브랜드 대상을 거머쥔 쌀입니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절정에 이른 행사장에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습니다. 단돈 2000원에 비빔밥을 맛볼 수 있는 ‘2000명 가마솥밥’이 대표적이죠. 초대형 가마솥에서 장작불로 지은 쌀밥을 매일 관람객에게 제공합니다.
고슬고슬 윤기 흐르는 쌀밥에 김치, 고추장, 들기름을 넣어 비벼낸 밥은 정겨운 추억을 담았습니다. 매일 한 차례 진행되는 ‘무지개 가래떡 퍼포먼스’에선 600m 길이의 가래떡을 방문객들과 함께 나눠 뽑습니다. 협동과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상징적 행사입니다.


올해 축제는 ‘풍년마당’, ‘황금다랭이논’, ‘하늘마당’, ‘가마솥마당’, ‘먹거리마당’, ‘햅쌀장터’ 등 11개 테마 마당과 11개 주제 공간으로 이뤄졌습니다. 모내기, 탈곡, 떡메치기, 인형극, 붓글씨 퍼포먼스 등을 체험하고 다양한 농기구와 짚풀 공예를 관람할 수 있죠.
먹거리마당에선 향토 음식과 막걸리 시식이 가능하고 햅쌀장터에서는 갓 도정한 햅쌀과 농특산물을 시중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축제의 중심인 이천쌀은 조선 성종 때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비옥한 토지에서 맑은 물과 공기를 품고 자라 품질을 인정받습니다. ‘임금님표 이천쌀’이란 브랜드로 독립해 음료와 아이스크림, 소주 등의 제조업체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천시는 2016년부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농협 등과 손잡고 새 품종 육성에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 임금님 수라상 진상…다회용기로 쓰레기 줄여
올해는 SK하이닉스와 함께하는 ‘산업의 쌀, 반도체 주제관’을 새롭게 마련해 쌀과 반도체가 모두 미래를 책임지는 자원이라는 점을 조명합니다. 아울러 다회용기를 전면 도입해 쓰레기 발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천역·터미널 등 주요 거점과 축제장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축제와 연계한 ‘모가권 테마관광벨트’를 통해 인증 방문객에게 온천·음료·미술관 등의 할인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천쌀문화축제는 1999년 ‘이천농업인축제’로 출범했습니다. 2001년 ‘이천햅쌀축제’를 거쳐 2004년부터 명칭이 고정돼 국내 문화관광 최우수 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경기 동남부에 자리한 이천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입니다. 동서 27㎞, 남북 36㎞의 표주박형으로 곳곳의 구릉 사이로 복하천과 송곡천, 청미천이 흘러 논농사에 적합합니다.
충적평야가 발달해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번갈아 차지하던 이곳을 고려 태조가 처음으로 ‘이천’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복하천을 건너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첫 글자와 끝 글자에서 따온 것이죠.
이곳은 1894년 갑오경장 때 이천군으로 근대 행정구역에 첫 편입된 뒤 1996년 이천시로 승격했습니다. 2010년 7월에는 서울시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천은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품고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에서 신둔면 3번 국도변에 들어서면 이천쌀 전문 식당이 즐비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 잡으면 수라상을 기다리는 임금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푸짐한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산업의 쌀’ 반도체 전시…도자기·산수유 축제 유명
장호원 인근의 설봉공원은 도자 전시판매로 유명합니다. 200여명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관상용 도자기와 생활도자기 외에 장작으로 불을 때 도자기를 굽는 전통가마도 자리합니다. 공원 위쪽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중심인 이천세라피아가 둥지를 텄죠.
인근 사음동 사기막골에는 조선 시대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가 있어 40여명 작가가 몰려 산다고 합니다. ‘이천도자기 축제’가 널리 알려진 이유입니다.
이천에는 봄에는 노란 물결, 가을에는 붉은 물결이 넘치는 산수유 마을도 있습니다. 백사면 도립리와 경사리, 송말리 일대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산수유 군락지가 있어 노란 꽃망울이 터지는 봄마다 ‘이천산수유축제’가 열립니다.

김경희 시장은 “올해 쌀문화축제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농업인과 소비자가 소통하고, 이천쌀의 우수성을 체험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며 “모가권 관광벨트 활성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