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휘몰아친 새벽,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언니 ‘은서’(김정민 분)를 차에 태운 채 병원에 도착한 ‘도경’(정려원 분)은 언니를 살려 달라며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현주’(이정은 분)는 도경의 혼란스러운 진술 속에서 묘한 이질감을 감지한다.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여자가 도경의 친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29일 개봉하는 스릴러 ‘하얀 차를 탄 여자’(사진)는 본래 JTBC 2부작 단막극으로 기획됐다가, 108분 길이의 장편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드라마 ‘검사내전’을 집필한 서자연 작가가 각본을 썼고, ‘검사내전’, ‘로스쿨’,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등을 공동 연출한 고혜진 JTBC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결말까지 관객을 긴장에 몰아넣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 누구의 말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눈길을 끄는 점은 연출자와 작가, 주요 배역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이끄는 인물이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 덕분인지, 작품은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 사건에 얽힌 여성들이 서로를 연민과 이해로 바라보는 심리 묘사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무심한 성격의 현주는 도경의 불안한 태도와 눈빛 속에서 자신과 닮은 상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사건에 빠져든다. 이러한 무언의 공명(共鳴)은 작품을 추동하는 힘이 된다.
고혜진 감독은 서스펜스 구조를 정교하게 쌓아 올리면서도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 차가운 눈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여성들의 심리전은 시각적 긴장감과 정서적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두 여배우가 내보이는 감정의 밀도는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정려원이 연기한 도경은 예측 불가한 진술을 던지며 극의 긴장을 견인한다. 이정은이 연기한 도경은 날카로운 시선과 냉정한 말투로 도경을 압박하면서도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복합적인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내공 있는 두 중견 여배우의 ‘연기 차력쇼’라 부를 만하다. 정려원은 이 작품으로 202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